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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욱·이승원·윤한결...MZ지휘자들이 몰려온다
80·90년대생 속속 등장 ‘세대교체’
열린 소통·국제무대 경험 장점 부각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 국내 악단
체계적 인재 발굴·육성시스템 주효
한국 지휘계에 MZ세대가 속속 진입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음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얻은 후 지휘자로 전향했다. 지휘자 윤한결(왼쪽)과 김선욱

희끗한 백발, 존재만으로도 아우라를 풍기는 백전노장. 60대 이상의 ‘거장 지휘자’가 무대에 서야 안심했던 ‘클래식 음악계’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 지휘계에 MZ세대가 속속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1988년생 김선욱(36)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부터 1994년생 윤한결(30)까지 10여 명의 ‘8090세대 지휘자’는 국내 클래식계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평론가인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해외에선 젊은 시절부터 재능이 있으면 발굴해 키워주는 환경이 마련돼있지만, 한국의 경우 젊은 지휘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 사이 이들이 서서히 두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지휘자들, ‘종횡무진’ 활동=한국 클래식계는 현재 김선욱을 필두로 이승원(34) 신시내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부지휘자, 정한결(33) 인천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이해(33) 리치몬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부지휘자(33), 데이비드 이(36)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등 MZ세대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인 최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윤한결과 역시 한국인 최초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 수상자인 이든(36)도 올해 여러 연주 일정이 있어 기대주로 꼽힌다 이들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20년대 이후다. 자신의 음악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얻은 후 지휘자로 전향한 MZ 지휘자가 많다. ‘스타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높았던 김선욱은 한국에선 2021년 KBS교향악단 정기공연을 통해 지휘자로 데뷔, 지금은 국내 4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경기필의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올해 4월 니콜라이 말코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이승원도 원래는 현악사중주단 노부스콰르텟에서 비올리스트로 활동하다 지휘자로 전향했다.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나 콩쿠르를 통해 주목받은 인재도 있다. 지난해 8월 세계적인 권위의 카라얀 콩쿠르를 정복한 윤한결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2021년 11월 처음으로 연 제1회 KNSO국제지휘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후 본격으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국내 주요 악단의 부지휘자 역시 30대 인재가 꽉 잡고 있다. 데이비드이, 정한결과 김지수(34) 경기필 부지휘자도 30대 나이에 부지휘자로 발탁돼 활동 중이다.

▶세대 교체 더딘 지휘...8090 인재 나온 배경은?=지휘는 사실 ‘세대 교체’도 더디고, ‘스타 탄생’도 어려운 분야다. 김선욱, 이승원, 윤한결 등 10여 명의 MZ세대 지휘자 이전에 등장한 젊은 지휘자라 봤자 이병욱(49) 인천시향 예술감독, 최수열(45) 전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홍석원(42) 광주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등 이른바 ‘40대 기수들’이다. 특히 한국 클래식계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악기마다 영재와 신동이 넘쳐나지만, 지휘는 정명훈(71) 이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을 손으로 꼽기가 힘들다. 올해 5월 김은선(44)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게 된 것도 정명훈 이후 30년 만에 거둔 성취다.

젊은 세대 지휘자가 드문 것은 지휘 분야가 가진 특수성 때문이다. 지휘자는 혼자 음악을 할 수 없는 직업인 탓이다. 모든 음악가들이 ‘자기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만들어갈 때, 지휘자는 최소 수십 명, 최대 수백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만나야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새 젊은 지휘자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주요 악단에서 차세대 인재를 발굴, 육성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서다. 국립심포니가 대표적이다. 국립심포니는 2018년부터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를, 2021년부터는 KNSO국제지휘콩쿠르를 열고 있다. 올해 역시 11월 6~10일 제2회 KNSO국제지휘콩쿠르를 계획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왕성하게 활동 중인 MZ세대 지휘자 10여 명 중 김선욱과 이든을 제외하면 모두 국립심포니가 발굴한 인재다. 이승원은 2021년 작곡가 아틀리에에 참여, 국립심포니를 지휘했다. 현재 양주시립교향악단을 이끌고 있는 박승유(37) 상임지휘자,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차웅(40) 예술감독도 국립심포니의 지휘자 발굴 프로젝트 출신이다. 2022년 예술의전당의 여름음악축제를 지휘한 김유원(36)과 윤한결 역시 국립심포니 출신 지휘자다.

▶MZ 지휘자 강점은 유연한 소통·큰 무대 경험=‘MZ 지휘자’의 공통된 강점은 바로 유연하고 열린 소통 자세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음악성, 큰 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등이다. 허명현 평론가는 “젊은 지휘자들은 단원들과 교감 능력이 뛰어나고, 음악을 만들 때 음악적 협의점을 찾는 과정이 능숙하다”고 말했다.

사실 과거엔 강력한 카리스마로 악단을 휘어잡는 ‘독재자형 지휘자’를 선호했다. 압도적 카리스마의 20세기 클래식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 등이 대표적이다.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은 “지휘자는 음악적으로 뛰어난 것은 물론 100여명의 단원과 대적해 기싸움을 하면서도 이들을 이끌며 음악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기에 이들에겐 오랫동안 강력한 통솔력과 리더십이 요구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권위가 높아지면서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달라졌다. 덕분에 지휘계 역시 ‘소통형 리더’를 원하게 됐는데, 젊은 지휘자들의 유연하고 열린 마인드가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MZ세대 지휘자들의 또 다른 강점은 자신감이다. 맏형 격인 김선욱부터 막내 윤한결에 이르기까지 이들에겐 언제나 ‘경험 부족’의 우려가 꼬리표처럼 따라오지만, 정작 본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김선욱은 “부지휘자로 경력은 없지만 많은 지휘자들의 리허설, 악단 단원들과 만남을 통해 10년 넘게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피아니스트로 섰던 세계 유수 무대와 지휘 이후에 가진 크고 작은 경험들은 젊은 지휘자들의 실력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지영 위원은 “김선욱과 이승원은 연주자로서 상당한 경험치가 쌓여 지휘자가 됐을 때에는 자기만의 음악 세계가 구축돼 성장이 빠르다” 고 평가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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