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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한국 자생식물 이야기〈27〉 히어리(Corylopsis coreana Uyeki)
종자 산파방식의 대가, 한국특산 꽃나무, 히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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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


봄에 꽃이 피는 나무는 잎이 돋아나기 전에 꽃이 피는 경우가 많다
.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 눈에 잘 띄기 위해서 그렇다. 진달래, 개나리, 생강나무, 산수유, 매화 등은 잎 보다 꽃을 먼저 피워서 곤충을 불러들인다.

한국특산 히어리는 전형적인 선화후엽(선화후엽) 수종으로 3월부터 4월까지 꽃망울을 터트리는, 대표적인 봄꽃나무이다.

앞선 글(얼레지)에서 종자에 붙은 엘라이오좀을 소개했다. 영양체 덩어리 엘라이오좀은 개미의 중요한 먹거리가 되는데, 개미가 개미굴로 옮겨가서 엘라이오좀만 발라내고 매끈한 종자를 개미굴 밖으로 내다버린다.

엘라이오좀 이외에도 식물의 종자 산파방식은 다양하다. 민들레, 단풍나무, 소나무의 종자에는 날개가 달려서 바람을 통해 퍼진다. 도깨비바늘, 도둑놈의갈고리 종자의 끝은 갈고리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스쳐가는 동물의 몸에 달라붙어 여기저기 퍼져나간다.

겨우살이 열매는 새들의 소화 및 배설을 통해 점성이 나타난 종자가 나무에 달라붙어 발아하는 방식을 취한다
.

스프링 장치 등 탄력을 이용해 종자를 튕겨내는 식물종도 많다. 제비꽃 열매는 아래를 향해 달렸다가 성숙하면서 위로 향하고, 익으면 씨앗을 싸고 있는 과피가 쪼그라들면서 안에 품고있는 씨앗을 위로 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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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 (국립백두대간 수목원 제공)


봉선화 열매는 열매 외피가 내피보다 빨리 생장하며 늘어나서
, 열매 봉합선이 터지면서 순간적으로 껍질 조각이 안쪽으로 말리면서 안쪽의 흑갈색 종자를 밖으로 튕겨낸다. 히어리, 회양목 열매는 스프링을 장착하고 기묘하한 방식으로 검은색 종자를 사방으로 튕겨낸다.

히어리 열매 안에는, 스프링에 해당하며 종자를 감싸고 있는 기관이 발달한다. 열매가 성숙하면 열매 봉합선이 벌어지면서 종자를 감싸고 눌려있던 스프링 장치가 순간적으로 펴지면서 종자를 멀리 튕겨버린다. 놀라운 일이다.

히어리는 엘라이오좀을 이용해서 개미를 유인하는 종자 산파방식을 취하는 대신, 자기만의 스프링 장치를 고안해냈다. 히어리를 종자 산파방식의 대가라고 부를만하다.

히어리(Corylopsis coreana)1924년 일본 식물학자 우에키가 전라남도 순천시 조계산 송광사 부근에서 처음 확인하고 송광납판화(松廣蠟瓣化)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납판화라는 이름은 꽃받침과 턱잎이 마치 투명한 종이에 밀랍을 먹인 것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1960년대초 서울대 이창복 교수님께서 전남지역 주민들이 히어리라 지칭하는 것을 듣고, 송광납판화라는 딱딱한 한자명 대신 히어리라는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설이 있다.

히어리는 2005년 환경부 멸종위기 식물로 지정되었다가 20121월에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지리산, 백운산(광양시)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히어리가, 순천시, 남원시, 구례군, 산청군, 하동군, 남해군, 백운산(포천시) 등지에서 자생지가 속속 알려지면서 그리 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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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천시의 엘레지 꽃(국립백두대간 수목원제공)


히어리는 산기슭 또는 산정부에서 주로 자라는 낙엽활엽관목이다. 키는 2~6m까지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달걀상 원형이다. 길이 5~9, 너비 7~10로 잎 가장자리에 톱니상 거치가 발달한다.

꽃은
3~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고, 총상꽃차례로 달려 아래로 늘어진다. 꿀이 들어있어 벌이 좋아라하는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열매는 삭과로 구형이며, 2실이다. 종자는 검은색으로 9월경 성숙한다.

재배특성 및 번식방법

포천시 백운산에서도 자생지가 발견됨에 따라 추위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한성이 강해서 중부 이북에서도 조경수, 봄꽃나무로 널리 식재되어 있다.

배수가 확보되는 환경에서 수분공급이 충분한 환경을 선호한다
. 바람이 잘 통하는 양지나 반그늘에서 잘 자란다. 6월 이전에 전정을 마쳐서, 꽃눈이 충분히 형성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좋다. 봄에 주렁주렁 노랗게 매달리는 꽃을 기대한다면, 강전정은 피하는게 좋다.

주로 실생으로 번식한다. 9월경 채취한 종자를 곧바로 파종하면 이듬해 봄에 양호하게 발아한다. 직파가 어렵다면, 노천매장해뒀다가 이른 봄 꺼내서 파종한다. 삽목을 통한 발근도 용이하다. 5~6월경 적당히 굳은 가지를 삽수로 해서 삽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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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 꽃가루 받이(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제공)


원예·조경용

약간의 경사가 있는 낙엽수림 하부에 집단 군락으로 조성하면 좋다. 수목원이나 공원 경관조성시에는 관람동선을 따라 길 가장자리에 개나리 대용으로 군식해도 좋다.

주렁주렁 매달리는 열매도 볼만하며, 가을철 노랗게 단풍이 드는 것도 장점이다. 꽃이 귀한 이른 봄에 주렁주렁 꽃을 아래로 매달고, 벌에게 꿀을 내어주는 고마운 꽃나무이기도 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도 여기저기서 히어리를 만날 수 있다. 3월부터 피기 시작해서 4월까지 꽃을 보여주면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수목원 곳곳에 특정 꽃나무로 조성된, 꽃나무길이 많으면 좋겠다. ‘히어리 꽃길로 불릴 꽃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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