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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원의 기후 close-up] 기후 없이 인권 없다
한 남수단 여성이 홍수로 불어난 물 속에서 머리에 얹은 바구니 안에 아이를 태워 걷고 있다. 2022년 5월 시작한 남수단 홍수로 인해 59만6000여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농작물이 광범위하게 파괴돼 식량불안이 높아졌다. [사진제공=기아대책행동]

인간은 죽는다. 다만 속도의 문제다. 인간은 예외없이 죽는다. 다만 존엄의 문제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최소한의 삶의 질이 보장돼야 한다. 인류 구성원들이 모여 만든 유엔 세계인권선언에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제1조)’고 강조하고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제3조)’고 새겨넣은 이유다.

각자 주어진 삶을 우리는 나름 열심히 헤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나의 삶의 크기와 길이를 단축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의 속도를 재촉하는 사람들, 바로 기후를 훼손하는 사람들이다. 분리수거에 게으른 평범한 다수와 화석연료로 셀 수 없는 돈을 버는 소수의 사람들을 동일하게 비난하지는 말자. 죄에도 비례의 법칙이 있다. 욕망 가득한 인간은 화석연료를 태우고 온실가스를 제어없이 뿜어내면서 지구의 수명과 삶의 종말을 재촉해왔다. “인류가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 패달을 밟고 있다”는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기후 위기는 이제 태어나기 전 태아의 건강부터 이후 삶의 각 단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단계마다, 생애 주기마다 기후 문제가 우리 삶에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 좀 더 차분히 조명해보면 나의 건강권을, 오랜기간 유지해온 삶의 방식과 문화를, 사회 인프라, 경제적 목표, 그리고 결국엔 모든 것의 생명을 조금씩 앗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후 이슈는 이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영역 모두를 포괄한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 기후는 생명이다

기후 위기로 뱃속의 아기는 태어나기도 전에 건강을 잃는다. 엄마의 건강은 아이의 건강이다. 영양이 풍부한 음식, 깨끗한 물과 공기가 부족한 공간에서 산모의 건강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취약한 형태의 인간이 결국 함께 위협받게 된다.

실제 기후 문제로 영향받는 추위, 더위 등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기후로 인해 태아 건강이 위협받고 조산 위험이 증가하며 산모가 가장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는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다. 키티 판 데르 헤이던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부총재는 작년 11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를 통제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미래를 가질 수 없다”며 “아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기후위기 영향을 받는다. 극한의 열은 조산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고 극심한 가뭄이 오면 영양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태어난 후에도 위협은 계속된다. 일부 지역 아이들 역시 깨끗한 공기와 물, 영양과 사회 인프라 등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하고 자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억 명의 사람들이 안전한 식수가 부족하고 매년 6억 명이 식중독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5세 미만 어린이가 식품을 매개로 한 질병으로 사망한다(사망자 30%). 2020년 기준, 식량 가용성과 품질, 다양성 등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7억7000만 명이 기아에 직면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사람들이 말그대로 ‘더워서 죽는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열 관련 사망의 37%가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로 인한 것으로,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 사망자는 20년 동안 70%나 증가했다. 지난 4월 9일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스위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지 않아 고령자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 기후는 일상의 위기다

믿기 어렵겠지만 일부 지역에서 수 천 만명의 여자 아이들은 기후문제로 삶의 기반이 흔들린 탓에 조혼을 강요당하고 있다. 과거 먹을 것 없던 ‘가난’에, 이제는 피할 곳 없는 ‘기후’ 문제가 겹친 것이다.

세계 소녀의 날을 앞두고 2023년 10월 세이브더칠드런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 변화와 조혼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소녀의 수가 현재 약 2990만 명의 청소년 소녀들이고, 2050년까지 33% 증가해 40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이 보고서 ‘폭풍의 중심에 선 소녀들’은 아동 결혼의 약 3분의 2가 평균보다 기후 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기후 위기와 아동 결혼’이라는 복합 위험에 빠진 국가들은 방글라데시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전역에 퍼져있다. 특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기니가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사람들마다 ‘일상’은 수 백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이번엔 20대 여성의 죽음이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해당 지역에 최소 수 억 달러의 경제 효과를 가져온다는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는 지난해에도 언론의 주목받았다. 그런데 2023년 11월, 외신들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콘서트에 주목한 이유는 달랐다. 바로 온열로 인한 20대 여성의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었다. 공연을 보러 간 이 여성은 쓰러진 뒤 병원에 옮겨졌으나 곧 사망했고 몇 주 뒤 사망 원인은 높은 온도 때문으로 밝혀졌다. 심혈관 쇼크와 심각한 폐 손상을 동반한 열사병으로, 실제 당시 리우데자네이루는 43.8도 최고치를 기록했고 이는 정부가 경보시스템 모니터링을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이 사건을 접한 대기물리학자(IPCC 위원) 파울로 아르탁소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없다. 브라질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적응 전략 실행에 너무 뒤쳐져 있다”고 비판했고, 기상역사학자인 막시밀라노 에레라는 “세계 기후 역사상 지금 남미가 겪고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사건은 없다, 세계 기후 역사가 다시 쓰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을 즐기기만 해도 모자를 시간에 이제는 콘서트장 도착 전 온도를 살피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도구를 챙기며, 기후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 기후는 생존권이다

최소한의 삶의 질은 인간이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는 지구 자정능력 자체를 퇴화시켰고 결과적으로 가장 취약한 사람들, 기후 위기 원인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2020년 3월 BBC 보도에 따르면, 세계 상위 10%의 부유층이 기후 변화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187배나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미 가라앉고 있는 태평양의 많은 섬 주민들은 탄소 배출에 거의 책임이 없지만 거주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기후 난민 문제다. 2022년 말 기준, 자연재해 및 전쟁으로 자국 내 다른 지역으로 간 난민은 약 7110만 명으로,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려 20% 증가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이 컸다. 이 가운데 기후재난으로 고향을 떠난 기후 난민은 약 3260만 명으로 전체 난민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전쟁 난민은 약 2830만 명으로 집계됐다.

필자가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COP28에서 만난 한 활동가들 중에는 기후 위기로 지역 곳곳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해온 사람들이었다. 말레이시아, 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기후 문제로 조상부터 대대로 살던 곳을 떠나면서 생존을 위한 삶의 터전은 물론, 수 백년간 이어져온 문화와 전통, 심지어 언어까지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처럼 기후는 내 주변의 많은 것을 아주 조용히, 동시에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2023년 10월 WHO는 폭염, 산불, 홍수, 열대성 폭풍, 허리케인 등이 인도주의적 긴급 상황을 만들고 있고 그 규모와 빈도, 강도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재차 경고한 바 있다. 이미 36억 명의 인구가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030년부터 2050년까지 영양실조, 말라리아, 설사, 열 스트레스로만 연간 약 25만 명이 추가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건강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 비용(농업, 수자원, 위생 등 건강을 결정하는 부문의 비용을 제외한 수치다)도 2030년까지 연간 20억~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상위 10% 사람들의 화석연료 ‘플렉스(Flex)’로 인해, 보건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이나 저소득층, 섬나라 사람들은 국제사회나 해당 사회의 지원 없이는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더 빠르게 몰리고 있다.

#. 기후는 인권이다

기후는 다름 아닌 생존투쟁이다. IPCC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제6차 평가보고서가 지적하듯 기후 위험이 예상보다 더 빨리 나타나고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지구 온난화 증가로 ‘적응’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의 삶을 위해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와야 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화석연료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던 에너지, 산업, 교통, 농업, 건축 등 각 부문에 획기적인 개선 없이는 우리가 숨쉬는 지구를 ‘정상화’시킬 수 없다. 약간의 지체와 지연이 엄청난 후과를 가져올 시기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다.

기후위기 문제를 경고해온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한 보고서에서 “연 총강수량 1m가 증가할 때 지역내총생산(일인당 기준) 성장을 2.54% 하락시키는 영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산업별로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외 노출 생산활동이 많은 건설업(-9.84%)과 비금속광물 및 금속제품 제조업(-6.78%) 등에서 실질 부가가치의 성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제 성장을 위해서도, 가장 적게 논의되는 인간의 존엄을 위해서도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자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좀 더 급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기후는 인권이다.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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