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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년 첼리스트 한재민, 담대한 자기 확신으로 채운 100평의 무대 [고승희의 리와인드]
역대 최연소 롯데콘서트홀 상주 음악가
첫 기획 공연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
담대한 자기확신으로 설득한 무대
첼리스트 한재민 리사이틀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00평(333㎡)의 무대 위로 덩그러니 놓인 첼로단 하나. 지나치게 외롭고 유달리 더 작아 보이는 의자를 향해 보타이를 맨 소년 첼리스트 한재민(18)이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두려움도 없이 걷던 그는 2000명의 관객을 마주하고, 인사를 건넨 뒤 몇 번의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활을 움직였다.

역대 최연소 롯데콘서트홀 상주 음악가인 한재민의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이 지난 27일 열렸다. 이날의 공연은 한재민에겐 유독 특별한 자리였다. 상주음악가로 선정됐을 당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피아노 반주 없이 첼로 솔로 독주회를 꼭 하고 싶었다”며 “항상 가슴 속에서 꿈꿔왔던 프로그램이자 올해 손 꼽으로 기다린 공연 중 하나”라고 했다.

관객들도 무척이나 고대한 무대였다. 공연에 앞서 롯데콘서트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진행한 ‘한재민 응원하기’ 이벤트에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메시지를 남겼다. 아이디 mylov*****을 쓰는 한 관객은 “‘유퀴즈’ 보고 한재민 군을 알게 됐다”며 “우리 아이도 첼로를 하는데 같이 보러가겠다”고 했고, chan*****을 쓰는 관객은 “원주의 사랑꾼, 불곰 한재민님”이라며 애정을 전했다. jh******을 쓰는 관객은 “당신을 만나러 여섯 여자가 뭉친다. 지금은 설레고 있고, 그날은 황홀한 예정이다”라며 한재민과의 만남을 기다렸다.

첼리스트 한재민 리사이틀 [롯데콘서트홀 제공]

한재민이 ‘상주음악가’로서 직접 기획한 이날의 공연은 프로그램 구성부터 비범했다. 그는 관객에게 익숙한 바흐의 무반주곡이 아닌 현대 작곡가를 들고 왔다. 영화음악 거장 존 윌리엄스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세 개의 소품’을 시작으로 가스파르 카사도(1987∼1966)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죄르지 리게티(1923∼2006) 와 졸탄 코다이(1882∼1967)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까지…. 신선함을 넘어 낯선 선곡이었고, 다른 악기의 도움을 받지 못해 숨을 곳도 없는 무대였다.

온전히 민낯을 드러낸 한재민의 첼로는 시작부터 망설임이 없었다. 단선율 악기는 묵직하고 풍성한 울림으로 존 윌리엄스의 세계로 진입하더니 영화음악을 듣는 것처럼 긴박한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시시때때로 표정을 바꾸는 팔색조 배우 같은 장면들이 수없이 나왔다. 귀를 불편하게 하는 화음들마저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소년 첼리스트는 음악의 색깔을 다채롭게 물들이며 현대곡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첼리스트 한재민의 공연 후 사인회 [롯데콘서트홀 제공]

카사도와 리게티의 곡에서 한재민은 고전 음악에선 만날 수 없었던 다채로운 연주법을 보여줬다. 첼로의 몸통을 퉁퉁 두드리다 현을 퉁겼고, 머뭇거리지도 주저하지도 않는 담대한 보잉으로 관객들을 설득했다. 1부의 무대에서 그는 검은 정장에 검은 보타이를 메고 나와 자신의 몸에서 모든 색채를 지웠지만, 음악만큼은 오색찬란한 빛깔로 가득 채웠다.

이날의 ‘메인 디쉬’ 격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였다. 하얀 보타이로 1부와는 의상의 변화를 준 그는 열여덟 살 답지 않은 깊은 감성과 낭만으로 거침없이 향해 갔다. 망설임 없는 활 시위마다 10대 음악가의 자기 확신과 무한한 가능성이 새겨졌다. 그의 안에 서른 여덟의 성인 음악가가 들어앉은 것처럼 성숙한 감정의 조각들이 튕겨나와 음표 사이로 내려 앉았다.

100명의 연주자들이 오르던 100평의 무대에서 한재민은 거인이었다. 이날의 공연은 첼리스트 한재민의 자기 증명이었으며, 향후 찾아올 모든 공연에 대해 느낌표를 찍어준 무대였다. 어디에도 숨지 않고 민낯을 보여준 뒤 개운해진 얼굴로 몇 번이나 인사를 하러 나온 한재민은 마지막 순간에서야 소년이 됐다. 해사한 미소로 손인사를 건네자 그제야 객석에서도 웃음이 나왔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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