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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정부 시위 아무 효과 없다”...푸틴, 정적 탄압 더 세질듯
러 투표 마지막날 곳곳 ‘나발니 시위’
액체테러·방화·화염병·투표소 훼손
인권단체 “전국적으로 74명 이상 구금”
압승 연임에 대내 통제, 우크라전 동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5~17일(현지시간)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로 5선을 확정지었다. 서방진영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푸틴 대통령의 독재체제에 큰 우려를 표했다. 특히 러시아 대선 마지막날인 17일엔 정오에 맞춰 세계 곳곳에서 푸틴 종신집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푸틴 대통령이 승리를 사실상 확정한 18일 모스크바 선거운동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위쪽). 지난달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17일 독일 베를린 러시아대사관에서 열린 ‘푸틴에 저항하는 정오’ 시위에 참석해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가운데). 같은날 몰도바 키시나우에서 푸틴 대통령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이오시프 스탈린의 사진이 나란히 새겨진 팻말을 들고 반(反) 푸틴 시위를 하고 있다. [AFP·AP·EPA]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5선에 성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내부 정적에 대한 감시와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정오 12시 이른바 ‘나발니 시위’가 러시아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푸틴 대통령은 이날 늦은 밤 승리 확정 연설에서 “반정부 세력이 주도한 시위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직격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카테린부르크, 첼라빈스크, 톰스크, 노보시비르스크 등 주요 도시의 투표소 밖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는 정오 시위가 열렸다. 지난달 옥중 사망한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생전에 “완전히 합법적이고 안전한 정치적 행동”이라고 동참을 촉구했던 시위 형태다.

WP는 이날 모스크바 내 대다수 투표소는 조용했지만 정확히 정오가 되자 긴 줄이 나타났으며 대부분 20~30대 시민이었고 인근에 경찰차가 배치됐다고 전했다. 유권자들은 “나발니가 나의 대통령”, “전쟁 반대, 푸틴 반대” 등 구호와 함께 투표 용지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한 러시아 시민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 나라엔 민주주의가 남아있지 않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성은 “푸틴에 맞서 출마한 세 후보 중 한 명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당국은 정오 시위 움직임에 ‘조율되지 않은 시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하면 최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사전 경고했다. 지역에 따라 경찰이 줄 선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하거나 소지품을 검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는 이날 대선과 관련해 17개 도시에서 최소 80명이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남동부 나발니 묘에도 지지자들이 헌화하면서 “우리는 당신을 선택합니다” 등 글귀를 두고 가기도 했다고 독립매체 노바야가제타 유럽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러시아는 영토가 광활해 정오 투표 참가자들이 흩어져 있어 시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며 투표소에 따라 수십명에서 수천명이 모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투표소 곳곳에서 액체 테러와 방화, 화염병 투척 등 방해 행위도 이어졌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알렉산더 고로프 내무부 차관은 “52건의 기물 파손 행위가 지속됐고, 그 결과 33건의 형사사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모스크바의 한 투표소 폐쇄회로(CC)TV영상을 보면 한 젊은 여성이 투명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은 뒤 병에 담아온 녹색 액체를 쏟아부어 그 안에 쌓인 투표용지가 훼손됐다. 이들은 러시아 형법 141조 선거 업무 방해 혐의로 러시아연방수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이들이 녹색 액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나발니가 당한 테러를 기억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나발니는 2017년 녹색 살균소독액 젤룐카를 얼굴에 뿌린 괴한 때문에 실명 위기를 겪었다.

푸틴 대통령이 새로운 임기 동안 대내적 통제를 강화하고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더 많은 억압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찍부터 제기됐다.

안드레일 솔다토프 유럽정책분석센터 선임연구원은 대선 전인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최근 러시아 정보 및 보안 기관의 활동이 공격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선거를 앞둔 (푸틴) 정권의 편집증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안정이 흔들리고 있어 반대자에 대한 살해와 해외 공격을 포함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의회 싱크탱크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그의 침략 전쟁을 합법화하고 남은 반대파의 입지를 줄어들게 해 향후 6년간 자신의 비전을 견제 없이 실행할 수 있게 만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이 2년 넘게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도 푸틴 대통령이 대선에서 압승하면서 전쟁을 장기간 끌고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모스크바 정치분석센터의 파벨 다날린 수석은 “이번 선거 결과는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어려운 시나리오조차 실행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정목희 기자

mokiy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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