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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음을 쳤지만, 모든게 다 틀렸다”…반 클라이번 심사위원의 ‘팩폭’ [거장의 마스터클래스]
피아니스트 장 에플람 바부제 韓 첫 마클
악보의 모든 것을 놓치지 않는 디테일
촌철살인과 열정…명언의 일타강사

장 에플람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지금 아주 이해하기 어려운 곡을 연주했어요. 모든 음을 놓치지 않고 연주했지만, 모든 음이 다 틀렸어요.”

10대 소년들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4번’과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 중 1악장의 연주를 마치자,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노 거장’ 장 에플람 바부제(61)는 “브라보”를 외쳤다. 하지만 ‘기쁨의 순간’도 잠시. 이내 ‘팩트 폭격’은 시작됐다.

“음을 연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작곡가가 원하는 것을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죠. 작곡가들은 아이디어와 영감이 넘쳐나는 사람들이에요. 그것을 무수히 많은 노력을 들여 악보 위에 그리죠. 그 악보를 잘 읽어내는 것이 우리의 첫 단계예요. 그리고 악보 뒤에 숨은 최초의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하죠.”

거장의 시선은 학생들의 작은 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작곡가가 악보에 남겨놓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간파한 그에게 ‘작곡가의 의도’를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아니스트 장 에플람 바부제가 최근 한국에서 처음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통해 연 이번 마스터클래스는 바부제가 영상 오디션을 보고 직접 세 명의 참가자를 뽑았다.

학생들도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를 누구보다 기다렸다. 쇼팽 에비뉴 국제 피아노 콘체르토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조유민(18) 군은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음악을 좋아했는데, 마침 바부제 선생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동휘(16)군은 “유튜브에서 선생님이 녹음하신 베토벤 전곡 중 여러 곡이 마음에 와 닿아 꼭 배워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 에플람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바부제는 ‘촌철살인’과 ‘명언’을 1분에 한 번씩 던지면서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는 ‘맞춤형 일타강사’였다. 극강의 파워E(외향형)를 떠올리게 하는 그는 어느 땐 배우 같기도 하고, 또 코미디언 같기도 했다.

프로코피예프를 선택한 조유민 군이 연주를 마치자 바부제는 피아노 옆에 서더니 ‘셈여림표 찾기’ 일문일답을 시작했다. “여기 피아니시모는 모두 몇 개죠?” 바부제의 질문에 말문이 막히자 숨막히는 압박이 이어졌다. “안 좋은 소식이에요.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내 “없다”는 말이 나오자, “두 번째로 안 좋은 소식”이라며 다시 한 번 살펴볼 것을 권했다.

이러한 시간을 가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부제는 “우리가 새로운 곡을 배울 때 해보면 좋은 훈련이 있다. 악보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다이내믹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파악해보면 도움이 된다”며 “우린 피아니스트이지만, 동시에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처럼 대하는 지휘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악보에 적힌 모든 악상기호를 숙지하고, 작곡가가 원하는 다이내믹을 찾아 ‘악보의 비밀’에 더 가까이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유민 군은 “프로코피예프 전쟁소나타 7번의 1악장은 레슨을 받을 기회가 많이 없어서 더 배우고 싶었다”며 “바부제 교수님은 다이내믹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신데, 이번 기회를 통해 작곡가가 연주자에게 원하는 연주법과 다이내믹 범주를 더욱 폭넓게 배운 시간”이라고 말했다.

장 에플람 바부제의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한 조유민, 현지윤, 강동휘(왼쪽부터)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현지윤(34) 씨는 마스터클래스에선 잘 다루지 않는 힌데미트의 ‘피아노를 위한 1922 모음곡 Op.26’을 들고 왔다. 그가 악보를 건네자 바부제는 깜짝 놀라며 “힌데미트를 선정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라며 예의주시했다.

그의 연주 이후 바부제는 다시 ‘팩트 폭격’을 이어갔다. 그는 “만약 악보 없이 연주를 들었다면 정말 환상적인 연주였다고 말했겠지만, 악보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그의 표현은 살벌했지만, 화법과 표정, 제스처는 무대 위 배우처럼 변화무쌍해 웃음을 자아냈다. 날카로운 지적을 하고 난 뒤 그는 참관자들 앞을 군인처럼 씩씩하게 걸어가다가 난데없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하듯 다리가 풀려 요상하게 걷는 동작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행진곡을 연주하는데 어떻게 루바토(연주자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템포를 바꿔도 된다는 의미)를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바부제의 수업은 상당히 디테일했다. 짧은 시간임에도 학생들의 실수와 악보와 다른 접근은 놓치지 않고 바로잡았다. 그는 “악보에 없는 지시사항을 연주하는 것”을 지적하며 템포와 리듬, 강약의 정확한 표현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잘 들을수록 더 잘 연주할 수 있고, 잘 듣는 것이 연주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바흐의 푸가를 예로 들어 볼까요. 우리가 더 많은 음향의 층과 성부를 들으려고 훈련하다 보면 화성의 긴장감을 듣는 것에 더욱 예민해질 것이고, 더 많은 성부의 진가를 알게 되고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돼요. 화성을 뭉텅이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더 많은 음악적 감정과 구조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예요.”

마스터클래스의 막내 강동휘 군의 수업에선 당근과 채찍이 동시에 나왔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과 쇼팽 연습곡 Op.25 10번의 연주를 마치자 “아주 어려운 곡을 선택했다”며 “무엇보다 이 곡이 어떤 성격의 곡인지 알아야 하고 작곡가보다 연주하는 우리가 이 곡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며 세세하게 수업을 이어갔다.

특히나 악보에 적힌 모든 지시사항을 꿰고 있는 바부제는 직접 연주를 보여주며 잘못된 부분을 일러줬다. 그러면서도 강군에게 ”사람들이 듣게 하는 재능과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학생의 성향에 맞는 피드백을 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에 따르면, 그는 이날 마스터크래스가 끝난 이후 강동휘 군을 따로 만나 레슨을 해주기도 했다.

강동휘 군은 “바부제 선생님은 모든 곡에 있어서 작곡가가 원하는 것을 넘어 더 아름다운 해석을 보여 주시는 연주자라고 생각했다”며 “마스터클래스 이후 작곡가의 의도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베토벤의 2악장짜리 짧은 소나타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게 됐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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