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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향과 논개의 초상이 닮은 덴 이유가 있다?![북적book적]
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일곱번째
얼굴은 타고난 유전자와 문화의 조합
미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해
외양이 닮아 회자됐던 논개 영정(사진 왼쪽)과 춘향 영정.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한 때 전북 남원과 경남 진주 소재 사당에 각각 있는 춘향과 논개의 초상화가 닮아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생존 시기도, 사는 지역도 다른 이들이 어떻게 쌍둥이처럼 외모가 비슷한 지를 두고 갑론을박이었다. 물론 작가의 친일 행적으로 작품이 수거되며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아직도 두 그림의 유사성을 두고 의문은 남았다.

두 미인도에 대한 미스터리는 의외의 인물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작고한 지 2년이 된 고(故) 이어령(1933~2023) 선생을 통해서다. 이어령의 유작 시리즈 ‘한국인 이야기’ 중 천지인 3부작 마지막 권인 신간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은 한국인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 미인의 기준 등이 형성된 과정에 대해 흥미로운 고찰을 시도한다.

저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특징인 ‘작은 눈과 낮은 코, 적은 털, 큰 머리’ 등은 시베리아 바이칼호의 혹독한 추위 때문에 비롯됐다. 뜨거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현생 인류가 유라시아를 지나 시베리아를 건너오면서 추위에 가장 많이 노출된 얼굴이 코는 낮아지고 눈두덩이는 두꺼워지며 적응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얼굴은 ‘나그네가 된 원숭이’가 빙하기의 혹한을 견뎌낸 일종의 인류적 ‘훈장’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인간의 얼굴이 타고난 DNA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민낯인 자연에 ‘문화’가 덧입혀져 비로소 얼굴이 완성된다. 같은 기원을 가진 인류가 각기 다른 모습을 하며 사는 것도 바로 얼굴에 문화가 입혀졌기 때문이다. 그 문화는 표정이나 종교, 화장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성형수술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한국인이 서양인들에 비해 얼굴 표현이 적어 회자되는 ‘한국적 무표정’ 역시 희노애락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얼굴이 유전자 뿐 아니라 문화에도 영향을 받다보니 미인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과거 미인의 기준은 그 시대의 여성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는데, 고구려 수산리 고분벽화의 여자 주인공과 조선시대 신윤복의 ‘미인도’는 그 모습이 사뭇 다르다. 고구려의 미녀는 큰 눈과 강한 턱을, 조선시대의 미녀는 섬세하고 가냘프며 하관이 작은 얼굴을 하고 있다. 영토 확장을 하던 고구려는 진취적인 외모가, 세도정치로 국운이 쇠퇴하던 조선시대엔 얼굴 자체보다 모성애와 같은 심성을 미의 기준으로 삼아 미인의 기준이 다른 것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춘향과 논개의 초상이 닮아 있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춘향은 지아비에 대한 절개를 지켰고, 논개는 왜장을 껴안고 투신했던 그 시대의 의로운 여인들이었다. 따라서 초상화 역시 수려한 외모만 표현한 게 아니라 그들의 기개를 강조하다 보니 외양이 엇비슷해진 것 같다는 게 저자의 추정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얼굴에서 보려고 했던 것은 바로 ‘생명의 눈빛’이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내면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한국인의 정신을 눈빛에서 읽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만주 벌판으로 간도로 쫓겨 다니던 우리 조상들이 보인다”며 “‘나’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이어령 지음·김태완 엮음/파랑북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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