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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그냥 각자 가던 길 갑시다. 뭐, 굳이...

오랜만에 국내 극장가가 후끈하다.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와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이 ‘쌍끌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두 영화는 각각 오컬트 미스테리와 다큐멘터리 영화로,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객 몰이에 성공한 모습이다. 특히 ‘파묘’는 개봉 10여 일만에 누적 관객 6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천만 신화’에 대한 기대감 마저 고조되는 상황이다.

이 두 영화의 흥행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던 극장가에 단비같은 소식이지만, 마냥 기쁘지 만은 않다. 회자되는 작품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일상화로 눈높이가 올라간 관객들을 만족시켰거나 새로운 장르의 흥행 가능성을 봤거나 하는 등 작품 자체의 화제성이 아니라 극장가에 분, 때 아닌 이념 논쟁이 트리거(Trigger, 방아쇠)가 됐기 때문이다. 반일주의니, 우파 영화니.... 영화계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념 논쟁 탓에 반으로 갈라진 형국이다.

사실 ‘건국전쟁’의 개봉으로 영화계에서 이념 이슈가 일부 생길 수 있다는 예상이 있긴 했다. 총선을 앞둔 시기에 보수 진영의 ‘대부’격인 이승만 대통령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보수의 대결집’을 의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자유총연맹, 한국교회총연합 등 보수 단체들이 줄줄이 단체 관람을 하며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는 영화가 일부 보수층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수단이 됐을 뿐 대립을 야기하는 도구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파묘’의 흥행에 대해 일갈하면서 상황이 묘해졌다. 그는 지난 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며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썼다. 극 중 일제가 조선의 정기를 끊어내려 박아 놓은 쇠말뚝을 뽑거나 주인공들이 모여 일본 요괴를 물리치는 장면 등을 반일주의라고 규정하며 ‘파묘’를 좌파 영화로 평가, 이념 논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사실 ‘파묘’를 반일주의 영화로 평가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이 작품은 친일파 집안의 묘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한 일제 잔재를 제거하는 내용의 오락영화다. 여기에 최민식, 유해진, 김고은, 이도현 등 주요 인물들의 이름을 상덕, 영근, 화림, 봉길 등 독립군들의 이름을 차용하는 등 독립 운동 정신을 되살리려고도 했다. 즉 무조건 일본을 싫어하는 ‘반일 영화’라기 보다 일제를 비판하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경계하는 일종의 ‘항일 혹은 반(反)군국주의’ 영화라고 보는 게 맞다.

물론 개인적으로 영화의 기저에 흐르는 사상이 마음에 안 들순 있다. 그러면 안 보면 그 뿐이다. 굳이 정치판에서 난무해 이젠 식상해진 이념 논쟁을 영화판까지 끌어와 ‘내 영화의 흥행을 방해한다’는 식의 음해를 할 필욘 없다.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다큐도 아닌 픽션 영화에 과도한 이념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난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며, 그냥 각자 가던 길을 가면 된다. 뭐, 굳이....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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