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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 청도에서 태운 ‘달집’…지구 반대편 베니스로 향한다
30년 간 숯에 천착한 작가 이배
비엔날레서 공개될 첫 영상물 촬영
정월대보름인 지난 24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이배 작가의 점화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이날 달집태우기 전 과정을 담은 영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상 설치 작품 ‘버닝’으로 상영된다. [조현화랑]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올해 첫 보름달이 뜬 지난 달 24일 저녁 경북 청도군. 청솔가지와 짚단을 쌓고 새끼줄로 붙들어 맨 ‘달집’이 붉은 불기둥을 이루며 활활 타올랐다. 나쁜 기운과 부정을 모두 없애는 듯이 타닥타닥 나뭇가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바람을 타고 오르는 불길은 마치 용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처럼 자욱한 연기를 세차게 뿜어냈다.

정월대보름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소원을 빌며 달집을 태우는 한국의 전통 의례가 이탈리아 베니스로 향한다. 오는 4월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30여 년간 ‘숯’이라는 재료에 천착한 작가 이배(68)의 개인전 ‘달집태우기’가 공식 부대 전시로 열릴 예정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 세계 5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국제 미술전이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24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이배 작가의 점화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이날 달집태우기 전 과정을 담은 영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상 설치 작품 ‘버닝’으로 상영된다. [조현화랑]
새끼줄로 붙들어 맨 달집에 전 세계에서 보내온 소망이 적힌 한지가 묶인 모습. [조현화랑]

달집태우기 전시는 한솔문화재단 뮤지엄산과 빌모트 파운데이션이 공동 주관하고, 부산 대표 갤러리인 조현화랑이 후원한다. 전시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 발렌티나 부찌는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을 잇는 참여와 연결로 현시대에 얽힌 인간사를 재조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미술과 독특하게 엮인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풍년을 비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농경사회였던 한국의 세시풍습은 자연의 재생과 순환을 염원하는 데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근대 사회에서 횡행했던 자연과 사람 간 대립을 해소하고, 자연의 리듬에 연결되고자 하는 전시의 오마주가 됐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24일 경북 청도군 화양읍에서 이배 작가의 점화로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렸다. 이날 달집태우기 전 과정을 담은 영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상 설치 작품 ‘버닝’으로 상영된다. [조현화랑]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을 하는 작가는 “서구권은 동양적 가치가 내포하는 정수를 여전히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전하고자 했던 정신을 (그들이)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가의 고향인 청도에서 진행된 이날 달집태우기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소망이 적힌 전통 한지 조각도 달집과 함께 타올랐다. 달집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불길이 달빛 밤하늘 높이 타오르다가 다음 날 아침 숯만 남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담긴 영상 작품 ‘버닝(Burning)’은 7개의 빔 프로젝터를 설치한 전시장 입구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작가 이배. [조현화랑]

작가는 1990년 도불 이후 서양 미술재료 대신 한국인에게 친숙한 숯을 사용해 작업을 해왔다. 순환과 나눔이라는 숯의 관념 위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 더해졌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존재를 표현한 그의 작품이 국제 무대로 뻗어나간 이유다. 작가가 구상한 흑백의 한국적 추상회화는 드로잉, 캔버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됐다. 특히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소개되는 작품 버닝은 그의 첫 영상 작업 결과물이다.

이 외에도 전시 공간 바닥과 벽면에 굽이치는 ‘세 개의 붓질’, 높이만 4.6m에 이르는 ‘먹’, 대형 숯 평면작 ‘불로부터’, 베니스 수로와 만나게 되는 ‘달’ 등 신작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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