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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계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찾아...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장르와 음악의 경계를 넘어선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실험
무지카 엑스 마키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눈빛 한 번으로 충분했다. 열 명의 연주자들은 비밀결사대원처럼 ‘무언의 신호’를 주고 받았다. 척하면 척. 애써 맞추려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소리가 화음처럼 쌓여 음악을 만들었다.

‘너무 앞서가거나 뒤쳐지지 않게.’ (테리 라일리가 ‘In C’ 악보에 적어둔 지시사항)

어쿠스틱 기타, 모듈러 신스, 가야금, 바순, 쳄발로, 성악…. 10개의 악기가 교집합처럼 얽혔다. “음악 사이에 편재한 아름다움의 조각들”을 찾기 위해 저마다의 소리를 꺼낸 사람들. 각기 다른 장르, 서로 다른 악기를 다뤄온 10명의 연주자들은 아주 오래 호흡을 맞춰온 것처럼 나와 타인을 침범하지 않으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Musica ex Machina)의 ‘인 앤 어라운드 씨(In & Around C)’는 독특한 형태의 공연이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의 조합은 물론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선택한 표현 방식도 흥미롭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친절하게 풀어낸 실험음악...앙상블의 재정의

무지카 엑스 마키나(윤현종·김규리·이호석·김예슬·안정아·추현탁·안상준·설호종·김혜민·아렌트 흐로스펠트)는 2017년 고음악 단체로 출발, 2019년 지금의 이름으로 재정비하며 다양한 음악 실험을 이어왔다.

윤현종(어쿠스틱, 일렉트릭 기타) 무지카 엑스 마키나 대표는 “음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아름다움의 조각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소리, 또는 음악의 경계는 어디인지 알고 싶어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라고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3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인 앤 어라운드 씨’(2월 24~25일·플랫폼엘) 역시 무지카 엑스 마키나가 이어온 음악 실험의 확장이자,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지향점에 더 가까이 가닿은 공연이다.

80분의 음악 공연은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된다.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테리 라일리의 ‘인 씨(In C)’와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창작곡인 ‘어라운드 씨(Around C)’가 두 축을 이룬다.

테리 라일리의 ‘인 씨’는 아름다운 멜로디가 이어져 만들어내는 음악은 아니다. 이 곡에 대해 윤현종은 “책으로 치면 완결된 문장들이 이어져 서사 구조를 이루는 책이 아니라 단어들만 나열된 악보와 같다”고 했다. 이 곡은 53개 마디로 구성, C 안의 음들로만 구성해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가는 음악이다. 반면 ‘어라운드 씨’는 ‘인 씨’에서 확장해 C 근처의 음들을 탐색해 ‘그들만의 소리’를 찾아 음악으로 매만진 작업이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사실 실험음악은 생경하고 불친절하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 역시 이질적인 악기 조합과 창작 실험음악이라고 규정한 방향성 탓에 이들의 음악세계로의 진입장벽이 높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는 이 지점에서 해답을 찾았다. 완벽하게 매만진 음악을 툭 던져놓는 기존의 음악 공연과 달리 이들은 친절함으로 무장했다. 한 곡 한 곡의 연주를 마치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간의 작업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공유하며 어려운 음악세계에 대한 간극을 좁혔다. ‘다큐멘터리 씨어터’ 형식이다. 다큐멘터리에 담긴 이야기는 이어질 곡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고, 그 곡을 작업해온 연주자들의 여정이기도 하다.

‘인 씨’로 시작한 공연은 ‘어라운드 씨’를 향하는 빌드업이었다. 공연은 서너 명의 연주자들이 뭉쳐 앙상블을 들려주다 숫자를 점차 늘려가고, 말미엔 10명의 연주자 전원이 출격해 ‘어라운드 씨’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각기 다른 악기가 만들어내는 매력적인 어우러짐은 관객을 잠시 다른 세계로 이끈다. 아렌트 흐로스펠트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선율로 쳄발로를 연주하면 이어 김혜민의 바순이 소리를 얹고, 그 뒤로 안정아의 목소리가 얹어져 신비로운 분위기(‘창내고자’)를 만든다. 그러다 분위기를 바꾸듯 타악기가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면 이내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앙상블은 기존의 앙상블이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엄격함도 뛰어넘었다. 앙상블의 기본은 ‘양보와 배려’다. ‘조화’를 위해 서로의 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존재감을 버리는 것이 ‘좋은 앙상블’을 만드는 요건이다. 한국 전통 타악 연주자인 김예슬은 그러나 “무지카 엑스 마키나의 앙상블은 나를 해치지 않으며 음악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음악가의 자율성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공연에서의 사운드 디자인도 음악가들이 자신을 덜 양보하는 요소가 됐다. 원형의 형태로 들쑥날쑥 모여앉은 10명의 연주자, 무대의 네 개 면에 우뚝 선 스탠드형 스피커, 곳곳에 설치된 마이크가 악기마다 다른 음량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줬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무언의 눈짓으로 소통…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공연의 하이라이트 격인 ‘어라운드 씨’는 불과 6~7분 밖에 되지 않는 곡이다. 이 곡의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어라운드 씨’를 만들기 위해 연주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먼저 연주자들은 C를 기준음으로 ‘인 씨’를 오마주해 C 근처의 음을 통해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었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음악’이었다. 그것은 음악가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연주자 스스로가 오랜 시간 만들어온 소리의 방향성이기도 하며, 연주자가 다루는 악기를 가장 잘 나타내는 소리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악기를 다루기에 10명의 연주자가 생각하는 C 근처의 음도, 각자의 기준음도 달랐다. 두드리고 때려 음악을 만드는 타악 연주자에겐 오선지의 음계와는 다른 기준음이 존재했다. 세계타악을 하는 설호종은 “수많은 물성을 지닌 타악기를 연주하나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무와 가죽 소리”라고 했다. 모듈러 신스를 다루는 이호석은 “BPM 120”이라고 했다.

또 다른 준비 과정은 ‘일상 속 소리’의 채집이다. 연주자들은 작은 메가폰에 각자의 일상에서 발견한 소리를 녹음해왔다. 일상의 소리에선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리들이 가득 채워졌다. “오늘 월요일이야!” 만 7세가 된 아들을 통해 ‘일상의 소리’를 채집한 리코더 연주자 김규리, ‘식집사’(식물 집사)들이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소리, 고소한 원두커피를 내리는 소리…. 음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소리들은 메가폰에 담겨 편견의 경계를 밟고 음악으로 어우러졌다.

‘어라운드 씨’ 연주는 10명의 연주자들이 각자 두 개의 메가폰을 작동시키며 시작한다. 첫 번째 메가폰엔 테리 라일리의 ‘인 씨’에서 발췌한 패턴이 담겨있고, 다른 하나엔 10명의 연주자들이 녹음한 일상의 소리가 담겼다. 정해둔 순서는 없지만, 연주자들은 눈짓으로 신호를 주고 받으며 순서대로 메가폰을 작동시킨다. 그런 다음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지카 엑스 마키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어라운드 씨’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무장했으나, 그것을 굳건히 떠받치는 것은 10명의 음악가들이 가지는 ‘음악에 대한 이해’였다. 자신이 다루는 악기에 대한 이해이자, 연주자로서 그려가는 음악적 지향점이 바탕해 있다. 나의 것에 대한 이해가 명확한 사람들이기에 ‘나를 보여주는 음악’을 분명히 전달하면서도, 타인의 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즉흥에 가까운 음악의 순간들에 연주자들은 때때로 무아의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10개의 행성은 광활한 음악의 우주에서 질서를 지키며 자기만의 우주를 유영하고, 의식하지 않은 채 조화를 찾아갔다. 그러다 서로의 그림자가 겹치며 자리를 내줘야 하는 때엔 미련 없이 자취를 감추고 기꺼이 어둠으로 향한다.

그 모든 순간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나의 소리가 ‘페이드 아웃(Fade-out, 양상, 음향이 점차 사라지는 것)’ 되는 때에도 음악은 이어졌고, 연주는 계속 됐다. 그 순간들을 윤현종은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로스가 2008년 발매한 음반 제목을 인용해 표현했다. “무대에서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느끼는 희열의 경지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자, 공연 연습을 하는 동안 시시각각 느껴왔던 순간”이라는 설명이다.

‘귓가에 남은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

경계를 넘어 ‘음악적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가는 사람들, 무지카 엑스 마키나가 만들어가는 ‘음악의 본질’이 여기에 있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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