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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들이 탐험을 떠날 때 화가를 대동한 이유[북적book적]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출신 작가
17~20세기 자연사와 미술의 공생
탐험의 끝엔 그림 컬렉션이 남아
[123rf]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8000만 점. 영국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동식물, 화석, 암석, 광물의 수다. 이곳은 매년 8000여 명의 방문 과학자들이 이용하는데, 이들이 해마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만 1만4000일 이상이다. 자연사박물관은 미술과도 떼어낼 수 없다. 조류, 포유류, 곤충류 등을 그린 수채세밀화 50만 점도 함께 전시돼 있다.

자연사와 미술. 언뜻 보기엔 연관성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인류가 수집한 자연사의 밑바탕엔 미술이 있었다. 사진이나 영상의 기술이 없던 시절, 미술은 동식물을 기록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17세기 후반 런던에 살던 의사 한스 슬론은 당시 자메이카 총독으로 임명된 앨버말 공작의 주치의로서 자메이카로 떠났다. 그는 자메이카로 향하는 세 달여 동안 선상 생활, 자연현상, 그리고 항해 중에 발견한 조류, 어류, 무척추동물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러나 과일을 비롯해 그가 만든 표본은 대부분 온전히 보관하기 어려웠다. 이에 그는 지역 화가인 개럿 무어 목사를 고용해 과일, 곤충, 조류 등을 그리게 했다. 그렇게 완성한 약 700여 종의 그림은 먼 훗날 영국의 자산이 됐다.

영국으로 돌아온 슬론은 이같은 노력으로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메이카에서 발견한 모든 식물을 정리한 ‘식물 편람’과 ‘자메이카 박물지’를 출판했다. 그가 평생 모은 식물 표본집만 가죽 장정으로 265권. 1만2500개의 ‘식물과 식물성 물질’, 6000개의 조가비 표본, 9000여 개의 무척추 동물 표본 등은 덤이다.

그의 광범위한 수집품들은 한스 슬론의 유언에 따라 국가에 기증됐고, 이는 곧 대영박물관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됐다. 아울러 자연사박물관에도 그의 수집품의 일부가 보관됐다.

슬론의 수집품 가운데엔 1705년 출판된 네덜란드령 수리남의 나비와 나방을 기록한 책에 도판으로 실린 훌륭한 수채화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는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여성 작가가 직접 수리남에서 2년 간 작업한 결과물이다. 메리안은 애벌레를 기르며 번데기와 성충이 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그림으로 담았다.

당시 곤충은 흙이 아닌, 알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다. 나비의 변태 과정과 유충과 성충의 먹이 식물 등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었다.

메리안은 이후 네덜란드로 돌아와 ‘수리남 곤충들의 변태’라는 책을 출판했고, 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이후 현대 동식물학의 아버지 칼 폰 린네의 연구의 토대가 됐다.

[글항아리 제공]

런던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 출신 토니 라이스가 쓴 ‘자연을 찾아서’는 17~20세기 자연사에서 중요한 성취로 기록된 10번의 탐험과 이때 탄생한 예술 작품들을 담았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8000만 점의 소장품, 50만 점의 미술품, 100만권의 장서 등에서 엄선했고, 기존에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다수의 자료도 포함돼 있다.

저자가 중점적으로 다룬 17~20세기는 미지의 세계로 머물렀던 자연사라는 과학 분야를 서구 세계가 한창 파헤치던 시점이다. 린네가 이명법을 창시하고,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과 진화론을 주창하던 시기다. 영상과 사진 기술이 없던 그 시절, 과학과 미술이 공생한 덕분에 자연사라는 독특한 예술 장르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태평양에서도 많은 화가가 중요한 항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의 인데버호 항해에는 저명한 화가 시드니 파킨슨이, 레절루션호 항해에는 게오르크 포르스터가 있었다.

파킨슨은 바다를 건너는 동안 해양 동물과 바닷새를, 육지에선 식물을 그렸다. 오스트레일리아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완성된 그림은 극소수였지만, 400점이 넘는 식물을 스케치했다.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의 진귀한 동식물에 대한 그림과 문서가 남게 된 것도 윌리엄 바트럼의 예술적 재능 덕분이다.

1752년 실론섬 총독으로 임명된 요안 히데온 로턴의 실론섬 동식물 그림 컬렉션에서도 피터르 드 베베러의 그림이 큰 역할을 했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 속에 숨겨진 모험과 화가들의 업적과 함께 책이 보여주는 그림들은 마치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장인 마이클 딕슨 박사는 서문에서 “항해의 끝에는 언제나 새롭고 귀중한 표본 컬렉션이 남았고, 사람들은 탐험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의미 있는 과학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잘 알려진 것이든, 덜 알려진 것이든 여기 적힌 항해기는 모두 극적이고도 영웅적인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자연을 찾아서/토니 라이스 지음·함현주 옮김/글항아리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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