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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영웅?” 과속단속 카메라 수십개 난도질…범법자 추앙하는 ‘이 나라’

지난해 5월부터 이탈리아 북부에서 도로변에 설치한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가 파손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SNS]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미국은 배트맨 있지? 우린 플렉시맨 있다!”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

이탈리아 북부에서 과속 차량을 단속하기 위해 도로변에 설치한 무인 감시카메라가 파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소셜미디어(SNS)에서는 해당 범법자를 '플렉시맨'으로 부르며 히어로 취급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등 매체는 최근 8개월 동안 북부 지역에서 과속 단속 카메라는 20여개가 파손됐다고 보도했다. 피해를 입은 지역은 베네토주, 롬바르디아주, 피에몬테주, 에밀리아-로마냐주, 파도바주 등으로 광범위하지만 범행 수법이 동일하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당 범죄는 새벽 1~2시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인적 없는 도로변 과속 단속 카메라에 접근한 뒤 앵글 그라인더를 사용해 카메라를 지지하는 철제 기둥을 반으로 동강낸 뒤 사라지는 것 이다.

지난해 5월부터 이탈리아 북부에서 도로변에 설치한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가 파손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사진은 해당 범죄를 저지른 일명 '플렉시맨'을 밈으로 소비하는 SNS 게시물. [온라인커뮤니티]

비슷한 범죄가 8개월간 반복되는 동안 정체불명의 범인은 '플렉시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는 1954년 앵글 그라인더를 개발한 독일 회사 플렉스(FLEX)에서 따온 별명이다.

북부 경찰은 피해 현장 주변의 CCTV 영상을 샅샅이 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범인을 특정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23일에는 파도바주 근처에서 과속 단속 카메라 기둥이 절단된 채 발견됐다. 여기에는 "플렉시맨이 온다"는 메모까지 남겨져 있었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플렉시맨은 운전자 사이에서 현대판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현지 SNS 등에는 감시 카메라를 절단하는 플렉시맨을 배트맨과 비교하거나, 일본 만화 속 검객 등으로 우상화한 게시물까지 속속 등장했다. 일부 운전자는 과속 단속 카메라에 돌을 던지는 등 모방 범죄를 벌인 사례도 보고 됐다.

이에 더해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모든 영웅이 망토를 입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웅은 앵글 그라인더를 갖고 있다"고 썼다. 또 다른 이용자는 "그가 모든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만큼 최소한 임무에 필요한 유류비를 지급받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지난해 5월부터 이탈리아 북부에서 도로변에 설치한 무인 과속단속 카메라가 파손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SNS]

이들은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지 않은 곳까지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 교통사고 예방보다 벌금을 거둬들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플렉시맨의 범행을 두둔하는 발언이 나왔다. 파도바주 빌라 델 콘테시의 시장인 안토넬라 아르젠티는 "과속 단속 카메라는 억압적인 도구이며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3배나 많다"며 "우리는 교육과 예방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동조 여론이 높아지자 베네토·롬바르디아 당국은 플렉시맨의 범행을 공개적으로 지지할 경우 범죄 묵인 혐의로 기소하겠다고 경고했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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