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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균 비극' 방지 위한 경찰·언론의 자기점검[서병기 연예톡톡]
[연합]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문화예술인들이 ‘고(故)이선균 배우의 죽음을 마주하는 요구’ 성명서를 12일 오전 발표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문화예술인들이 뜻을 함께 했다. 영화와 드라마 등 연기자 단체 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영화제작자 등 범 연예 단체가 이에 동참했다.

29개 문화예술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하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배우 송강호 등 개인 2000여명이 뜻을 함께 하며 결성된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이제는 고인이 된 이선균 배우가 정식 입건된 때로부터 2개월여의 기간 동안,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언론과 미디어에 노출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가혹한 인격살인이었다.

결국 고인은 19시간의 수사가 진행된 3번째 소환조사에서 거짓말 탐지기로 진술의 진위를 가려달라는 요청을 남기고 스스로 삶의 마침표를 찍는 참혹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그리고 크게 3곳, 수사 당국과 언론, 정부 및 국회에 질문을 던지고 요구사항을 밝혔다. 3곳중 앞의 2곳의 책임이 더 무거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이선균 비극의 재발을 막는 즉각적 방법은 경찰과 언론의 관행에 대한 반성과 개선이다. 왜냐하면 이선균의 죽음은 경찰의 앞서나가는 발표와 이를 자극적인 형태로 보도하는 언론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첫번째로 '수사당국에 요구한다'며 고인의 수사에 관한 내부 정보가 최초 누출된 시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에 걸친 기간 동안 경찰의 수사 보안에 한치의 문제도 없었는지 관계자들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공보책임자의 부적법한 언론 대응은 없었는지, 공보책임자가 아닌 수사업무 종사자가 개별적으로 언론과 접촉하거나 기자 등으로부터 수사사건 등의 내용에 관한 질문을 받은 경우 부적법한 답변을 한 사실은 없는지 한치의 의구심도 없이 조사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기를 요청한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감정 결과 음성판정이 난 지난 11월 24일 KBS 단독보도에는 다수의 수사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어떤 경위와 목적으로 제공된 것인지 면밀히 밝혀져야 할 것이며, 3번째 소환조사에서 고인이 19시간의 밤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한 후인 12월 26일에 보도된 내용 역시 그러하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형법 126조(피의사실공표)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돼있다.

그럼에도 인천경찰서는 이선균의 피의사실을 언론에 알리고 소환했던 세 차례 모두 포토라인에 세움으로써, 이선균의 사생활을 거의 라이브로 중계하듯이 보도됐다. 뿐만 아니라 이선균과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성이 나눴다는 통화 녹음 파일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여과 없이 보도됐다. 이런 상황들로 인해 연예인 마약 사실을 흘렸던 경찰이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조급증에 시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는데, 그런 것이라면 더욱 문제다.

피의사실공표는 위법인데도 가능했던 데에 대해 ‘문화예술인연대회의’는 "수사당국은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한 문장으로 이 모든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수사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만이 잘못된 수사관행을 바로잡고 제2, 제3의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분명히 했다.

두번째는 "언론 및 미디어에 묻는다"며 언론에 던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고인에 대한 내사 단계의 수사 보도가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공익적 목적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예술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사생활을 부각하여 선정적인 보도를 한 것은 아닌가?

특히 "대중문화예술인이 대중의 인기에 기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악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소스를 흘리거나 충분한 취재나 확인절차 없이 이슈화에만 급급한 일부 유튜버를 포함한 황색언론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병폐에 대해 우리는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정녕 자정의 방법은 없는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피의자신상공개에서 언론이 내세우는 가치는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 국민의 알권리다. 이선균 배우에 대한 사적 보도가 공공 이익과 국민의 알권리, 표현의 자유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연예인의 사생활은 극히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보도할 수 없다는 게 판례를 통해서도 확산되어야 하는데, 한국언론의 과잉 경쟁구도는 그마저도 이를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변명일 수 있다.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언론의 경쟁적 보도 관행이 결국 불러온 비극이다. 우리가 이런 일이 생길 줄 과연 몰랐을까? 지금부터라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론에 대해서도 각성을 촉구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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