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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0억 시장‘ K-뮤지컬’ 위기?!…졸작·스타 의존도 없애려면? [2024 전망]
최대 호황기 맞은 뮤지컬 업계
팬데믹 이후 정상화 되는 시기
규모에 걸맞는 재정비·쇄신 필요
팬데믹의 그림자를 뚫고 나온 한국 뮤지컬 계는 지난해 최고 호황기를 맞았으나, 업계 전문가들은 새해부턴 “규모에 걸맞는 재정비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오페라의 유령’ [에스앤코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팬데믹의 터널에서 벗어난 한국 뮤지컬은 지난해 최고 호황기를 맞은 듯 했다. 티켓 판매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시장이 5000억원으로 확대됐고, 스타 배우들은 회당 수 천만원씩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업계는 그만큼 즐겁지 않았다. 규모만 커졌지 내적 성장이 동반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올해 규모에 걸맞는 재정비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1일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23년 3분기까지 대중음악을 제외한 공연 티켓 판매액은 4577억원. 이는 전년도 전체 뮤지컬 티켓 판매액인 4253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뮤지컬계 ‘극성수기’로 꼽히는 4분기 매출이 포함되면 2023년의 뮤지컬 시장 규모는 무난히 5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K-뮤지컬의 기세는 좋았다. ‘영웅’과 ‘레베카’가 영화로 치면 1000만 관객에 해당하는 100만 관객을 달성했고, 대작 뮤지컬은 장기 공연으로 시장 확장을 이끌었다. 높은 티켓 가격과 베스트셀러 대작의 장기 공연이라는 ‘콤비 플레이’가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최고가 좌석 기준 19만원에 달하는 ‘오페라의 유령’이 8개월 간 장기 공연을 진행했는데도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원종원 순천향대학교 교수는 “지난해 뮤지컬계는 비상 시국에서 벗어나는 해로, 검증된 작품이 (무대에) 많이 올라갔다”며 “팬데믹 기간 동안 많은 손실을 본 제작사들이 시장이 팽창하는 시점에서 실수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지난해가 못다한 과제는 오롯이 새로운 해가 떠안게 됐다. 팬데믹과 엔데믹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한 해를 보낸 현재, 본격적인 시장 확장과 도약을 위한 준비가 절실하다.

스타 독식·대작만 흥행…양극화 드러낸 뮤지컬 시장

‘스타 배우’의 독식, 창작 초연작의 열세, 대작 스테디셀러 중심의 흥행…. 한국 뮤지컬계의 ‘고질병’은 지난해에도 여전했다. 뮤지컬 장르가 가진 독특한 특징 때문이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뮤지컬은 노동집약적 장르로, 다른 매체에 비해 비용도 많이 발생하고 수고로움도 크다”며 “여기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유튜브 등 경쟁 매체가 많아져 뮤지컬 제작사는 날로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나 지난 2023년은 뮤지컬계에 이어진 병폐가 극명하게 드러난 해였다. 배우 중심의 대극장 작품 위주로 흥행을 이어가며 캐스팅에 따라 객석 점유율이 차이가 났고, 대극장 창작 뮤지컬의 편수는 극히 적었다. 중·소극장 작품 중에는 조기 폐막작도 나오기도 했다. 외적 성장 뒤로 양극화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원 교수 역시 “2023년 뮤지컬 계는 신선한 시도가 없었던 한 해로 성숙도 측면에서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홍광호 아이비가 출연 중인 ‘물랑루즈!’ [CJ ENM 제공]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제작사들의 ‘안정적인 선택’은 뮤지컬계가 직면한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10여년 전부터 최정상 자리에 있던 몇몇의 스타 배우와 연출자, 음악감독이 업계를 좌지우지하고, 일부의 ‘브랜드 파워’만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게다가 도전적인 시도와 실험은 증발했고, 수 백억원을 들여 제작한 신작 뮤지컬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시장 규모는 확대됐다는 점이다. 콘텐츠는 ‘그 나물에 그 밥’인데 관객들은 수 십만원을 주고 극장을 찾는다. ‘볼 사람’은 무조건 ‘보는 시장’이 뮤지컬인 것이다. 이는 뮤지컬 관객의 구성 비율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뮤지컬 관객은 크게 ‘뮤지컬 덕후’로 불리며 ‘N차 관람’하는 ‘회전문 관객’과 일 년에 1~2편 정도 뮤지컬을 즐기는 일반 대중으로 나뉜다. 이중 일반 대중 관객들은 배우와 작품의 인지도를 기준으로 작품을 고른다. 지혜원 교수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뮤지컬은 고가의 티켓 비용을 고려해 입소문이 난 작품, 실패 확률이 적은 작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관객이 신작에 인색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같은 흥행작 위주로의 관객 쏠림 현상은 결국 업계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배우에 대한 팬덤으로 뮤지컬을 보러가는 관객은 입맛도 너그럽다. 관객의 깐깐한 눈높이는 콘텐츠 성장을 이끄는 일등 요인이나, 현재의 뮤지컬은 좋아하는 배우를 보러가는 장르인 만큼 ‘비판의 요소’가 개입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들은 “뮤지컬은 장르의 특성상 라이브로 노래를 듣고, 스타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제작사가 안주하기에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위험 부담을 줄이려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 제작사와 이 안에서 최적의 선택을 하는 관객이 만나자, 뮤지컬계는 쳇바퀴 돌듯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지 교수는 “이러한 요인으로 인해 뮤지컬은 신선하고 새로운 것을 좇는 컨템포러리 장르가 아닌 클래식 장르가 되리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새로운 스타·브랜드 발굴 필요…“실패 자금의 지원이 필요한 때”

이러한 업계의 고질병을 뜯어고치려면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새 얼굴’이 절실하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창작진, 새로운 스타, 새로운 브랜드가 어느 장르보다 필요하다. 새로움을 기반으로 내실을 다져 본격적인 산업화를 시작할 때다.

원종원 교수는 “그간의 뮤지컬 시장은 독자적인 산업의 동력을 찾으며 발전해 온 만큼 이제는 대대적인 분갈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혜원 교수 역시 “새로운 스타, 신진 창작진 발굴로 업계의 내실 다지기가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그렇다고 민간 제작사가 모든 위험 부담을 떠안으라는 말은 아니다. 수 백억원을 투자한 ‘새 작품’이 관객에게 외면당했을 때, 그 손실을 떠안기엔 제작사들 사정 역시 녹록치 않아서다. 다수의 제작사들이 팬데믹 동안 ‘적자의 늪’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때문에 “제작 결과의 위험 부담을 제작사에게만 지우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말한다.

뮤지컬 ‘일 테노레’ [오디컴퍼니 제공]

지금은 ‘발상의 전환’과 새로움을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갈급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 교수는 “현재는 ‘성공 확률이 높은 작품’, ‘돈이 될 만한 작품’으로 지원금이 쏠리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 지원금이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도록 신진 창작진을 지원하고, 신선한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원 교수 역시 “세제 혜택을 통해 제작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창작 기지를 마련해야 한다”며 “모태펀드로 지원금을 할애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티켓 가격 조정, 장기 상영 시스템 구축, 스타 마케팅과 더불어 신진의 발굴이 어우러져 대중성을 갖춘 시장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향후 20~30년 후 뮤지컬 시장의 토대를 다지고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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