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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롭지 않으면 외면”…눈 높아진 관객들로 영화계 ‘곤혹’ [2023 결산]
대작· 흥행 보증수표 대신 신선한 작품 ‘돌풍’
올드보이 흥행참패…결국은 콘텐츠가 문제
서울의 한 영화관. [연합]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올해 영화계도 어김없이 녹록치 않았다. 애초 극장가엔 앤데믹에 대한 기대감이 감돌았지만 관객들은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다만 그 냉정함이 단순히 극장가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 콘텐츠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기준이 훨씬 높아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흥행 보증수표가 부도수표로…수익 낸 韓영화 겨우 6편

올 한해 손익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단 6편에 불과하다. ‘범죄도시3’, ‘밀수’, ‘잠’, ‘콘크리트 유토피아’, ‘30일’, ‘서울의 봄’ 등이다. 이 가운데 올해 천만 영화는 ‘범죄도시3’와 ‘서울의 봄’ 등 두 편 뿐이었다.

흥행작들을 살펴보면, 성수기를 겨냥해 화려한 캐스팅으로 무장한 흥행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손익분기점을 넘은 작품들 가운데 전통적인 성수기에 개봉한 영화는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 ‘30일’ 등 3편에 불과했다.

극장가의 성수기인 여름에 개봉이 몰린 텐트폴 영화(대작 영화)들은 반쪽 흥행에 그쳤다.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제외하고, 대작으로 불렸던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또 다른 성수기로 불리는 추석 극장가에서도 기대작들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강동원을 내세운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 하정우·임시완의 ‘1947 보스톤’과 송강호가 주연한 ‘거미집’은 모두 스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사실상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달짝지근해: 7510’[마인드마크 제공]
‘30일’ [마인드마크 제공]
저예산 로맨틱 코미디는 오히려 선전

오히려 기대작 아니었던 작품들은 반전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은 대작들 사이에서 저력을 발휘했다.

여름 성수기에 개봉한 ‘달짝지근해: 7510’은 138만 명을 모으며 대작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이는 할리우드 대작 ‘오펜하이머’와 배우 정우성이 연출한 ‘보호자’와 맞붙은 결과여서 더 의미 있는 성과였다.

영화 ‘30일’ 역시 가을 극장가에서 대작들을 물리치고 216만명을 모으는데 성공하며 손익분기점(160만 명)을 넘겼다.

이 같이 로맨틱 코미디가 대작들보다 오히려 관객을 더 끌어모을 수 있었던 것은 팍팍한 현실을 잊을 수 있는 가벼운 웃음을 원했던 당시 대중의 심리가 크게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선균·정유미 주연의 ‘잠’도 147만명을 모으며 손익분기점(80만명)을 넘는데 성공했다. 흥행이 쉽지 않은 공포 스릴러 장르였음에도 탄탄한 연출력으로 높은 몰입감으로 관객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다.

‘더 문’[CJ ENM 제공]
‘비공식작전’[쇼박스 제공]
‘올드보이’ 감독들의 흥행 참패…세대교체 되나

올해는 유독 ‘올드 보이’ 감독들의 흥행 참패가 두드러졌다. ‘신과 함께’ 시리즈로 쌍천만 신화를 썼던 김용화 감독은 ‘더 문’으로 50만 명 모으는데 그쳤고, ‘터널’의 김성훈 감독 역시 ‘비공식작전’으로 105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영화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강제규 감독 역시 ‘1947 보스톤’으로 오랜만에 복귀했지만 102만명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영화 ‘밀정’, ‘악마를 보았다’ 등으로 연출력을 자랑한 김지운 감독도 칸 영화제에 초청된 ‘거미집’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겨우 31만 명을 모으며 사실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신인 감독들은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 거장 감독들이 키운 후예들의 성적이 빛났다.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박찬욱 키즈’였던 엄태화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텐트폴 작품이었고, 칸 영화제에 초청된 ‘잠’ 역시 ‘봉준호 키즈’인 유재선 감독의 입봉작이었다. 손익분기점 돌파에는 실패했지만 추석 극장가에서 가장 흥행했던 ‘천박사’ 역시 박찬욱·봉준호 감독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김성식 감독의 첫 작품이다.

‘‘서울의 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문제는 콘텐츠…눈 높아진 관객이 원인

그러나 올해의 이러한 흐름이 영화계의 세대 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콘텐츠에 대한 관객들의 기준이 한층 높아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올해 흥행작을 살펴 보면, 신인 감독 뿐만 아니라 올드 보이 감독들의 여전한 저력을 과시한 작품들이 있다. ‘밀수’의 류승완 감독과 천만 영화로 등극한 ‘서울의 봄’의 김성수 감독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표적인 기성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취향을 적중한 작품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개봉 5일 만에 200만명을 동원한 ‘노량: 죽음의 바다’의 김한민 감독 역시 흥행에 성공한 중견 감독이다.

‘밀수’[NEW 제공]

결국 영화 흥행의 관건은 화려한 캐스팅이나 감독의 명성이 아닌 영화 콘텐츠 자체의 힘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대중화로 작품의 선택권이 많아진 와중에 비싸진 극장 티켓 값까지 부담스러워지자 관객들은 과거보다 작품을 까다롭게 고를 수 밖에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심영섭 대중문화 평론가는 “올해 영화는 굉장히 스펙타클하거나 탁월한 연출력이 뒷받침하거나 역사 의식을 자극하는 등의 요소가 있어야 관객들에게 통했다”며 “(흥행에 실패한) 일부 감독들은 의미있는 시도를 하려고 했지만 관객들은 감독들의 과거 명성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싸진 영화 티켓 값과 OTT의 발전으로 극장가 나들이가 단순히 오락이 아닌 문화 생활로 여겨지는 현실에서 그 만큼의 시간과 돈을 들일 정도의 콘텐츠여야만 관객들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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