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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이 내 딸에게 ‘죽어도 된다’ 말할 때…지적장애 아이에서 시작된 ‘인간의 조건’ [북적book적]
이성을 토대로 한 서구 철학은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을 정상적인 인간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서구 철학의 최고선은 이성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지성과 인지 능력을 ‘인간의 조건’으로 뒀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인지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인가.

페미니스트 철학자인 에바 페더 키테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철학과 석좌교수는 “우리가 가치를 부여해온 이성은 중심이 아니며 인간성과 전혀 상관없다”고 말한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하는 인간,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의도하고, 욕망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고유한 인격 그 자체가 인간을 이루는 몸이자, 영혼이다.

키테이의 신작 ‘의존을 배우다’는 키테이가 장애를 가진 딸 세샤에게 배운 것부터 시작해 결국 그가 기존 철학의 토대를 허물고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세샤를 키우면서 그의 철학적 삶과 개인적 삶이 충돌했다. 철학이 딸의 존엄성을 보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샤는 베토벤과 바흐를 즐겨 듣는다. 이성으로 사유하는 능력과는 무관하게, 타인과 기쁨과 사랑을 나누려고 한다. 키테이는 철학이 주장하는 인간의 조건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철학자의 이상화된 세계에는 지적장애가 들어설 공간이 없다. 플라톤은 ‘결함이 있는 아기’를 죽도록 두라고 했다. 로크와 칸트는 이성이 모자란 사람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정의했다. 토빈 시버스는 장애가 소란을 피운다고 말했다.

그런데 키테이가 철학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했던 답은, 정작 사회에서 온전치 못한 존재로 취급받은 딸 세샤에게 있었다. “몸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샤만큼, 나에게 영혼에 관해 말하도록 하는 다른 누구를 나는 만나본 적이 없다.”

키테이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철학의 틀을 완전히 깨부쉈다. 우선 돌봄에서의 해방이 아닌, 의존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인지장애를 가진 딸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일당백’ 성과를 내는 독립적인 사람이 온전한 인간으로 취급받는 현대사회에서 세샤는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존재로 낙인된다. 그런데 사회적 존재인 우리는 삶에서 타인의 돌봄에 의존하는 시기를 반드시 거친다. 키테이는 불가피한 ‘의존의 시기’를 인간의 영역에 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의존은 독립의 반댓말이 아니다. 그 자체로 연립이 될 수 있다. 키테이는 “의존이 아닌, 독립이 비장애 중심주의 사회의 구성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각자도생이 강요되는 사회에서 독립을 일종의 의무로 여기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독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의존의 필연성을 배제하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하기도 한다.

키테이는 독립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의존을 관리하는 더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철학적 사고에서 배제되었던 ‘돌봄윤리’ 개념을 제시했다. 저자는 “돌봄윤리가 완전히 독립적인 윤리인지, 더 큰 윤리 이론의 일부인지 결정되지는 않았다”면서도 “돌봄윤리는 장애인과 그 가족, 돌보는 자를 윤리적 탐구 영역에서 온전히 다루기 위해 필요한 도덕 철학”이라고 말했다.

의존을 배우다/에바 페더 키테이 지음/반비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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