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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톨릭 역사 새로 쓴 ‘김대건 성상’ 조각가 한진섭 “신의 뜻이 아니고서야…” [요즘 전시]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성상 조각
4m 대형 조각상 제자리인 양 딱 맞아
김대건 신부 혼 담으려 눈 표현 집중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조각가 한진섭.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모든 것이 신의 계획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어요. 안 될 이유는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예순일곱의 조각가 한진섭이 놀랍다는 듯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세기 동안 오로지 돌 하나만 탐구해온 그가 바티칸 역사를 새로 쓰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는 지난 9월 바티칸 성당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김대건 신부의 성상을 조각했다. 가톨릭 교회의 중심인 로마 바티칸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은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9월 16일 바티칸 베드로 성당에서 열린 김대건 신부 성상 축복식 모습 [연합]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막한 한진섭 개인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바티칸에 서다’ 전시장에서 최근 만난 작가는 “조각상 제작을 의뢰받고, 돌을 찾고, 작업을 하고, 설치를 하는 모든 과정이 기적과 같았다”며 “나는 김대건 신부상을 만들려고 태어났구나, 그래서 조각가가 됐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의 눈가에 벌겋게 이슬이 차올랐다. 모형 제작부터 성상 완성까지 2년 가량이 걸린 ‘위대한 여정’. 그 과정에서 그가 감내해냈을 엄청난 중압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세워진 외벽 벽감(壁龕·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은 무려 550년간 비어 있던 자리다. 대성당 안쪽으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 외벽을 두고 등을 맞댄 위치다. 관광객들이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 벽화를 보고 나와 만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작가는 “김대건 신부님을 위해 비어둔 자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조각이 그 자리에 딱 맞았다”라며 “4m에 가까운 대형 조각상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설치했는데, 거짓말처럼 수평도 한 번에 딱 맞았다”고 설명했다.

김대건 신부 성상을 조각하는 작가 한진섭 모습. [가나아트센터 제공]

김대건 신부상이 바티칸 성당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될 수 있었던 건, 2021년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부임한 유흥식 추기경의 공이 컸다. 이탈리아 조각가에게 갈 뻔한 제작 작업이 한국 조각가에게 올 수 있었던 것도, 유 추기경이 “한국의 성인은 한국 조각가가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며 바티칸을 설득한 덕분이었다.

“돌 조각을 평생 해온 것, 제가 이탈리아 카라라에서 유학한 것, 가톨릭 신자가 된 것, 이 일을 맡기에 앞서 우연히 구상 조각을 연이어 한 것까지. 돌아보니 모두 계획된 일처럼 느껴집니다.”

실제 한진섭은 전통적인 제작 방식으로 인간과 동물의 형상을 추상적으로 조각해 온 작가였다. 그런데 우연히 한 성당의 의뢰로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을 조각하게 됐다. 대전교구청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김대건 신부 조각상도 그의 몫이 됐다. 덕분에 섬세하고 사실적인 조각으로 그의 포트폴리오가 완벽하게 채워질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 조각상 제작에 쓰인 대리석. [가나아트센터 제공]

바티칸에서 공식적으로 의뢰받고 작가가 착수한 일은 조건에 맞는 대리석 원석을 찾는 일. 그는 최소 4m, 폭이 2m가 넘는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5개월간 돌을 찾았고, 지난해 12월 마침내 피에트라산타에서 조건에 딱 맞는 대리석을 찾았다. 피에트라산타는 그가 유학 시절 10년간 일했던 바로 그 마을이다. 그는 “사람 속보다 더 알 수 없는 게 돌 속”이라며 “김대건 신부 조각상으로 만든 돌은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스타투아리오(Statuario) 대리석보다 더 단단하고 색상도 더 하얗다”고 말했다.

작가는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에서 25세에 순교한 청년 김대건 신부의 혼을 꺼내 담아내야 했다.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고, 용감하며 담대한 모습.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김대건 신부의 성품을 담아내기 위해 특히 눈에 집중했다. 작가는 “1㎜ 깊이 차이로도 눈동자가 전하는 힘이 완전히 달라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벽감에 설치하고 나면 보이지 않는 조각상 뒷모습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제작 과정에서 4m 높이 사다리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던 작가는 당시를 떠올리며 “멀쩡하게 일어났다. 다치지 않았다”며 “김대건 신부님이 항상 옆에서 보살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부연했다.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계기로 저의 작품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직 어떤 조각을 해야할 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나아트센터는 바티칸에서 돌아온 한진섭에게 개인전을 제안했다. 이로 인해 60㎝ 크기의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비롯한 그의 조각 등 약 30여점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관람비는 무료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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