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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실은 비트코인 앞에 한 방의 먼지”…MZ들이 꼭 찾는 발랄해진 '이것'
일확천금 노린 나무꾼·쫄쫄이 도개비
모두가 알만한 동화·설화가 창극으로
발랄·산뜻해지니 국립극장 문전성시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네 것 아닌 것도 내 것이고 내 것도 내 것이라, 동시대성 갖춘 사람 여기 있네.” (창극 ‘금도끼 은도끼’ 중)

‘정직한 삶’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호구’ 취급받는 세상이 됐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 당연하다며, 가치관이 역전된 시대. “성실은 비트코인 앞에 한 방의 먼지”(‘금도끼 은도끼’ 중)라는 대사는 자본주의 개미들의 삶을 관통한다. 모두가 다 아는 동화를 비튼 창극 ‘금도끼 은도끼’다.

익히 알려진 동서양 설화와 동화가 다시 태어났다. 국립창극단이 장장 10개월에 걸쳐 진행한 ‘작창가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차세대 작창가 발굴을 위해 지난해 처음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올해로 두 번째 진행, 네 명의 ‘새싹’ 작창가를 발굴했다.

‘작창(作唱)’은 한국 전통 음악의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에 딱 맞는 소리를 짜는 작업이다. 판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창극의 근간을 만드는 일로, ‘작창’의 퀄리티는 곧 ‘창극의 성패’를 가른다.

사실 현재 창극계는 작창가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에서 대작 창극을 매만지는 작창가는 단 세 명 정도.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지낸 명창 안숙선, ‘작창의 신’으로 불리며 인기 창극을 섭렵한 한승석 중앙대 교수, 창극의 실험과 변화를 이끈 소리꾼 이자람 등이다. 국립창극단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미래의 창극을 이끌 새로운 세대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서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두메’ [국립극장 제공]
발랄하고 경쾌한 새로운 세대의 작창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세대의 작창가가 태어났다. 경쾌하고 발랄하며, 파격적 시도는 귀엽기까지 하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지난 2월 4명의 작창가(이연주·이봉근·강나현·신한별)와 4명의 작가(이철·김도영·진주·윤미현)를 선별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사실 민간 소리극 단체 소속이거나, 이미 작창 경험이 있는 프로들이다. 이 프로젝트는 신진 작창가들이 저마다 활동하며 느낀 갈증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다. 국립창극단의 체계화된 시스템 안에서 작창 노하우를 익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안숙선이 고문으로, 한승석·이자람이 작창 멘토로, 고선웅·배삼식이 극본 멘토로 참여해 신진 작창가와 작가들을 지도했다. 이른바 ‘창극 어벤저스’가 뭉친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작창가와 작가들은 각각 짝을 이뤄 지난 10개월 동안 30분 짜리 네 편의 창극을 만들었다. 동화 ‘금도끼 은도끼’(작창가 이연주·작가 이철희), 그리스 신화 ‘메두사’를 원작으로 한 ‘두메’(작창가 이봉근·작가 김도영), 전래동화 ‘도깨비 감투’를 기반으로 태어난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작창가 신한별·작가 윤미현),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창극(작창가 강나현·작가 진주) 등이다.

네 작품에서 나타난 공통된 특징은 ‘스토리의 재해석’이다.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현대적 관점에서 비틀어 동시대성을 반영했다. 현재의 관객과 동떨어진 가치관과 정서를 지닌 부분은 과감히 도려낸 것이다.

‘금도끼 은도끼’는 욕심 많은 나무꾼을 지탄한 과거의 상식을 지우고, 팍팍한 현대 사회에서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한 방’을 바라는 현대인의 앙칼진 심리를 대변했다. ‘두메’ 역시 그리스 신화가 폭력적으로 그린 여성 서사를 뒤집어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다만 시간의 한계로 온전히 이야기가 드러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도깨비 감투를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쫄쫄이 댄스복’을 만들어 인간 세상을 활개치고 다니는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는 재기발랄 자체였다.

새내기 작창가들은 기존 창극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에 걸맞는 작창을 보여줬다. 창극 소리의 묘미인 말맛을 살린 대목도 많았다. 아재 개그 스타일의 ‘할머니 말고 하모니’(‘금도끼 은도끼’)라며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다. 울고 있는 나무꾼 앞에 나타난 산신령은 “무슨 연유인가”라며 밈(meme,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퍼져나가는 현상)을 차용했다. 모든 작품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다양하게 활용한 것은 ‘소리의 묘미’를 살리는 장치였으나, 일부는 과도해 보였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금도끼 은도끼’ [국립극장 제공]

새로운 시도 역시 눈에 띄었다. 한 편의 ‘로드무비’를 방불케하는 ‘두메’는 먼 길을 떠나는 설렘을 잘 살렸다. 이 작품은 ‘음악이 깡패’ 수준이었다. 파괴적인 기타 연주와 드럼, 아름다운 선율을 살린 피아노까지 어우러져 가장 현대적인 음악으로 완성됐다. 스타 소리꾼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합격한 이봉근은 “8분의 10박 장단에 3.3.2.2 리듬꼴을 만들어서 쾌활한 분위기의 새로운 장단을 만들었다. 선법은 메나리 토리를 사용하여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말했다.

‘금도끼 은도끼’의 작창가 이연주는 “말의 밀고 당김을 적절히 배치하는 등 장단 놀음을 고려했다”고 귀띔했다.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는 창극을 습격한 ‘줌마 댄스’를 추는 배우들의 귀여운 춤 동작과 통통 튀는 이야기가 음악과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신한별 작창가는 “경기도 지역의 도당굿에서 영감을 받아 메인 곡을 만들고, 10박 터벌림 장단에 선율을 더해 경쾌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눈의 여왕’에선 대취타, 자진도살풀이 장단 등 신선한 시도가 많이 나왔다. 작창가 강나현은 “무용반주와 무속 장단에 자주 사용된 자진도살풀이 장단, 태평소와 심벌즈로 연주한 대취타, 12박과 엇모리를 혼합한 듀엣곡을 통해 각각의 장면을 잘 살리고자 했다”며 “화려한 악기 사용을 지양하고 소리꾼 고유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달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 [국립극장 제공]
“전성기 맞은 창극…작창가 발굴은 300년 대계”

공연계 관계자들은 “지금의 창극은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맞고 있다”며 감탄한다.

국립창극단이 김성녀 전 예술감독 시절(2012~2019)부터 확장해 온 창극 레퍼토리는 착실히 그 기반을 다져 ‘창극의 변화’를 불러왔다. 한승석 중앙대 교수는 “김성녀 전 예술감독은 세계적인 시각과 안목을 가지고 파격적인 소재와 연출로 창극의 실험을 이어오면서, 전통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창극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큰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윤중강 평론가는 “김성녀 예술감독은 창극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본질적 질문과 동시대성을 바탕으로 한 양식적 질문, 두 가지 화두를 가지고 창극의 향방을 찾았다”고 평가했다.

올 한 해 국립창극단의 무대를 찾는 관객들만 봐도 창극의 기세를 체감하게 된다. 웹툰을 무대로 옮긴 창극 ‘정년이’는 개막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이 나며 20대 젊은 관객들을 국립극장으로 불러왔다. ‘공연계 드림팀’(극본 김은성, 작창 한승석, 음악 원일, 연출 이성열)이 뭉친 ‘베니스의 상인들’은 셰익스피어 희극을 무대로 옮기며 뮤지컬 창극의 힘을 보여줬다. 경극과 만난 창극 ‘패왕별희’는 이질적인 두 나라의 전통이 어우러져 새로운 콘텐츠를 꽃피웠다.

‘베니스의 상인들’의 극본을 쓴 김은성 작가는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를 보면 온갖 소재를 가져와 굉장히 소화를 잘 한다. 웹툰, 셰익스피어, 그리스 비극 등이 창극으로 훌륭하게 다시 태어났다”며 “그동안 쌓아온 역량이 폭발해 지금의 창극을 만든 힘이 됐다”고 말했다.

창극 공연이 열리는 날에는 국립극장에 커피차가 배달되고, 대포 카메라가 등장하는 등 생경한 풍경도 연출된다. ‘국악계의 아이돌’ 김준수·유태평양·이소연·김수인 등이 저마다의 팬덤을 확보, 2030이 창극 관객층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립창극단의 작품은 개막도 전에 매진 사례를 기록해 관람이 어려울 때가 많다. 올해 국립창극단 작품의 객석 점유율은 평균 95.2%(83.6%). 올해 공연한 ‘정년이’는 99.7%(유료 93.5%), ‘베니스의상인들’은 99.3%(유료 87.4%), ‘심청가’는 99.6%(유료 87.1%), ‘패왕별희’는 99.2%(유료 88.9%)였다.

국립창극단의 원조 ‘스타’ 소리꾼 박애리(1999~2015)는 “처음 입단해 활동하던 때는 초대권을 줘도 창극을 보러 올까 말까 했다”며 “이젠 유료 관객으로 해오름극장을 가득 채우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새 시대를 맞고 있는 창극은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작창가의 발굴이 중요해졌다. 전통의 문법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를 입은 소리가 있어야 창극의 부흥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승석 교수는 “신진 작창가 발굴은 창극의 내실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2년째 이어진 프로젝트를 통해 총 8명(2022년 유태평양·서의철·박정수·장서윤)의 신진 작창가가 태어났다. 이중 박정수·장서윤은 ‘베니스의 상인들’에 작창보로 참여하며 한승석 교수와 함께 신선한 감각의 작창을 선보였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작창가를 발굴하는 것은 300년 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발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작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도록 해 단계적 발전을 이뤄갈 수 있도록 육성하고 있다. 우수한 성과를 보이면 작창보나 짧은 작품의 작창가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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