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미술관 기능의 재발견...교류하고픈 작가 22명의 ‘창작 콜라보’
아르코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시회
정정엽·장파 작가의 협업 작품 [아르코미술관 제공]

“선생님의 작업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협업을 하기 전까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사실 없었어요.”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아르코미술관. 작가 이진형(41)은 작가 박기원(59)과 함께 구상해 만든 무제작을 소개하며 입을 뗐다. 기하학적 형태가 스며드는 방식으로 공간과 협력해 그림을 그린 박기원의 캔버스 한 점이, 독립된 캔버스 그림을 틈 없이 서로 이어붙이는 이진형의 스타일과 만났다. 두 작가가 그린 네 점의 캔버스가 나란히 붙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평면과 색채인데, 개성 강한 각 작품이 서로에게 스며든 듯 조화를 이뤘다.

세대도, 기법도, 심지어 추구하는 주제도 서로 다른 작가 22명이 만났다. 이들은 서로 일면식이 없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개관 50주년 기념전시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르코미술관이 개관 50주년 기념전시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내년 3월 10일까지)를 연다. 전시는 다른 관계성을 가진 작가로 구성된 9개 팀이 참여했다. 과거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이 교류하고 싶은 다른 세대의 작가를 추천해 전시 작가가 선정됐다. 작가의 80% 이상이 아르코미술관에서 처음 전시를 하는 작가다. 동시대 작가 뿐만 아니라 고(故) 공성훈, 김차섭, 조성묵 작가의 유작과 미발표작도 함께 선보였다.

전시명에 드러난 주름은 미술관의 과거와 미래의 접점이 그리는 궤적을 의미한다. 차승주 큐레이터는 “들뢰즈의 주름에서 인용하게 된 문구”라며 “미술관의 현재가 접점의 궤적과 경로의 경과물이라는 점에서, 미술관의 미래가 어떤 접점들로 그려질 것인지 탐구했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이번 전시가 작품이나 유명 작가가 아닌, 미술관 그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미술관의 특징을 소재로 한 신작들을 소개하거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반적인 기념전시의 구성 방식도 탈피했다. 차 큐레이터는 “미술관이 주도적으로 작가를 선정하는 권한을 내려 놓았다”라며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 참여해 참여를 확장해가는 하나의 연결 공간으로 미술관을 상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전시작은 참여 작가들의 교류에서 파생된 실험적 결과물이었다. 사라지고 유약한 존재가 가진 저항을 부드러운 드로잉으로 이미지화하는 작가 정정엽(61)은 본인과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작가인 장파(42)와 협업했다. 장파는 남성 젠더 중심의 거대 서사에서 귀 기울이지 못했던 여자들의 세계를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 작가다. 정정엽은 “제게 큰 도전일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작가와 손잡게 됐다”며 “서로 교류하며 발산하는 에너지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 역사를 토대로 한 강렬한 색체의 평면 작업을 해온 작가 서용선(72)은 무려 나이가 40살 이상 차이 나는 작가 김민우(28)·여송주(27)와 평면을 넘어선 조형적 실험작을 선보였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항일 농민 운동인 신안 ‘암태도 소작쟁의’ 평면은 소리에 반응하는 3D 미디어아트로도 재현됐다.

1974년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개관한 뒤 50년 동안 2000여건의 전시를 개최해 온 아르코미술관의 발자취를 되짚어 보는 아카이브 자료 전시도 별관에서 별도 진행된다. 임근혜 관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50주년을 맞아 다양한 예술 주체가 교류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서 기능해 온 아르코미술관의 과거와 앞으로의 지향점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