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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된 노력’ 일생 바친 사람입니다…당신도 인생 걸 용기 있나요? [요즘 전시]
김세일 개인전 ‘또 하나의 몸’ 전시 전경. [김종영미술관 제공]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동서고금을 통해서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다.” (고(故) 김종영 조각가)

당장 2m가 넘는 통나무가 눈앞에 주어졌다면, 여러분은 어떤 헛된 노력으로, 무엇을 조각하고 싶으신가요. 오롯이 톱과 끌만 가지고 미세한 나뭇결을 따라 1㎜ 오차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작업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어볼 용기가 날까요.

실제 국내에서 나무 조각으로 작품을 꽉꽉 채운 전시를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우선 국내에는 나무 조각가가 손에 꼽힐 정도로, 몇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현대미술과 달리 대중의 관심이 덜한 분야인 것도 사실입니다.

김세일, 수인(囚人), 나무, 1988. [김종영미술관 제공]

그런데 여기, 헛된 노력이 주는 즐거움을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나무 조각으로 1992년 첫 개인전을 연 조각가 김세일(65·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의 무려 40년간 제작 여정을 살펴보는 작은 회고전 ‘또 하나의 몸’이 열렸습니다. 다루기 까다롭기로 손꼽히는 나무를 어르고 달래며 다룬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전시입니다. 톱과 끌로 작업하는 원로작가의 내공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김세일, 벽, 캔버스 뒷면에 석고, 2023 [김종영미술관 제공]

‘왜 조각가였나’라는 질문에, 한 평생 수작업에만 매진한 김세일은 말합니다.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좋습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성, 그것이 주는 단단한 힘이 있어요.” 조각가의 손결이 온전히 배 있는 전시 작품은 현실의 이해를 떠난 듯 자유로워 보입니다.

이를 보고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고(故) 김종영 조각가의 유고 ‘유희남매’를 떠올렸습니다. “유희란 것이 아무 목적 없이 순수한 즐거움과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은 자유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면, 다분히 예술의 바탕과 상통됩니다.” 예술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속없는 노력의 낭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런 김세일의 발목을 잡은 단 하나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눈을 조각해낼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가 특히 인간의 눈에 천착해 스카치테이프와 철사, 석분 점토 등으로 작품 이야기를 뻗어나간 이유입니다. 그는 조각가 누구라도 살아있는 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김세일 개인전 ‘또 하나의 몸’ 전시 전경. [김종영미술관 제공]

“누구나 얼굴도, 손도, 발도 그럴듯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눈은 아무도 만들지 못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오래된 의문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김세일은 나무를 깎아 만든 ‘수인(囚人)’에서 벗어나, 철사를 엮어 만든 ‘불가촉(untouchable)’ 연작, 점토를 재료로 한 ‘X-mass’ 등으로 세계관을 뻗어나갔습니다. 그가 눈은 마음에 두고, 눈이 아닌 그 배경을 만들어 보기 위해 시도한 또다른 헛된 노력이었습니다.

“투명한 구로 눈을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눈이 되려면 너무나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결국 눈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몸이 아닐까, 하는 잡념에 불과할 질문에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김세일, 불가촉, 철망, 2002.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세일이 한 평생 천착한 눈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조각으로 표현될 수 없는 걸까요. 그런데 어쩌면 덧없다 느껴질, 그의 애쓰는 마음에서, 왜 어떤 쾌감마저 느껴지는 걸까요. 김세일은 “이번 전시 ‘또 하나의 몸’은 오직 조각을 이어가려는 예술적 설정일 뿐, 더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눈은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관(觀)’ 그 자체일지도, 인간의 우주를 담아낸 ‘소우주’ 일지도, 그래서 온전히 담아내기란 대상의 일생을 알지 못하고선 영원히 불가능한 영역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많은 노력이 낭비되어야 하는 이유가 되겠죠.

“현실적인 이해를 떠난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초월적 태도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없이는 예술의 진전을 볼 수 없다. 희랍 조각에 유희성이 없는 것은, 희랍 조각가는 공리가 없는 데는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故) 김종영 조각가)

전시는 내년 1월 14일까지. 무료 관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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