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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시온의 빛’ 혹은 ‘무기 강국’...이스라엘의 두 얼굴
가자 점령지서 신무기·감시기술 시험 등
이스라엘 방위실험·무기수출국 배경 조명
이-팔 분쟁상황 분석, 국제압력 필요 역설
가자지구 라파 난민촌에서 한 여성이 바닥에 앉아 울부짖고 있다. [연합]
팔레스타인 실험실/앤터니 로엔스틴 지음/유강은 옮김/소소의책

“공습이 일어나자마자 건물 밖으로 나가보니 조카가 두 다리를 잃은 채 넘어져 있었어요.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선 도와달라며 기어 왔죠.”

가자지구의 주민 이브라임 아부 암샤는 최근 이스라엘군이 누세라이트 난민캠프를 폭격했던 당시 세 살 짜리 조카가 겪은 악몽을 영국 BBC 방송에 이렇게 전했다. 조카가 다른 폭격으로 부모와 형제를 잃은 지 보름 만이었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일-팔레스타인 전쟁은 두 달 동안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낳았다. 하마스의 첫 공격으로 이스라엘에선 1200명이 사망하고 240여 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 가운데 외국인 포함한 105명은 최근 풀려났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감금된 상태다.

팔레스타인의 인명 피해는 훨씬 크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1만5900명이 사망했다. 이중 하마스 대원은 5000명 수준이고, 나머지는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다. 이스라엘이 최근 수일 간의 휴전을 멈추고 시가전을 재개하면서 사상자는 더욱 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것일까. 20년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취재한 독립 언론인이자 신간 ‘팔레스타인 실험실’의 저자인 엔터니 로엔스틴은 이 분쟁의 뿌리가 책의 제목처럼 ‘팔레스타인 실험실’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이스라엘은 건국 때부터 자국산 무기 개발을 서둘렀다. 중동지역에서 고립된 처지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여기엔 프랑스, 미국 등 서방세력의 든든한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개발된 무기는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대량 수출됐다. 대상은 주로 독재정권이나 내전 중인 나라였다.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 샤 치하의 이란, 각각 내전 중인 레바논과 과테말라 등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은 다양한 무기 수출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며 무기 강대국으로 거듭난다. 이스라엘의 무기판매액은 지난 2021년 기준 113억달러(약 15조원). 이스라엘은 글로벌 10대 무기판매국이 됐다.

이스라엘이 무기강국이 된 배경엔 단순히 서방 세력의 지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완벽한 실험실이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사이와 분쟁이 생길 때마다 점령지역에서 신무기를 시험했다. 그리곤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데 사용된 무기를 소셜 미디어에 버젓이 상업적으로 홍보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 처음 세운 가자 장벽 역시 매년 개선시키며 장벽 기술을 고도화했다. 팔레스타인을 통제하고 제압한 경험이 이스라엘의 수입 원천이 된 셈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 퇴역 군인들이 설립한 NSO와 셀레브라이트, 블랙큐브 등이 개발한 사이버 감시 기술이다. 그 기술은 멕시코, 토고, 중동 및 인도에서 반정부 인사 등을 불법 감시하는데 쓰였다. NSO가 만든 악명 높은 휴대전화 해킹 소프트웨어 페가수스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해된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자말 카쇼기와 아마존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를 감시하는 데 사용됐다.

가자지구에 투입된 이스라엘 드론은 현재 유럽연합이 지중해의 난민상황을 순찰하는 데 쓰고 있다. 유럽연합은 난민 감시를 위해 이스라엘에 의존하고, 심지어 목숨이 위험한 난민들을 방치하기까지 한다. 이같은 상황의 중심엔 이스라엘 최대 민간 방위 산업체 엘빗시스템스와 국영기업 이스라엘 에어로스페이스 인더스리스가 있다. 이뿐만 아니다. 미국이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세운 하이테크 장벽에도 이스라엘의 장벽 기술이 주효했다. 이스라엘은 자국 남·북부 국경에 하이테크 울타리와 장벽을, 요르간 강 서안 근처엔 긴 분리 장벽을 세운 경험이 있다.

저자는 수십 년 간 지속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전세계에 지속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빛을 잃도록 비난하는 등 국제적인 압력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다행히도 노르웨이 최대 연금기금인 KLP 등 많은 기관 투자자들이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우려를 표하며 이스라엘 기업들에서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물결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스라엘과 그 지지자들은 시온주의에 헌신하든지 자유의 가치를 고수하든지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역의 아파르트헤이트 상태를 생각하면 두 개의 가치를 동시에 신봉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이 행동과 방위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는 ‘불가촉 천민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현정 기자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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