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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대만·일본 피아니스트의 만남 “화합을 위한 6개의 손”
김도현ㆍ킷 암스트롱ㆍ타케자와 유토
마포M클래식축제 ‘스리 피스 콘서트’ 
김도현, 킷 암스트롱, 타케자와 유토 [마포문화재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던 ‘만남’이 성사됐다. 한국, 대만, 일본 피아니스트가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특별한 무대다. 여섯 개의 손이 만들어 낼 하모니의 주인공은 김도현(29·한국), 킷 암스트롱(31·대만), 타케자와 유토(25·일본)다.

세 사람의 무대는 아시아 3국 스페셜 콘서트 ‘3 피스 콘서트(3 PEACE CONCERT)’라는 이름으로 오는 5~7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진행된다. 마포문화재단이 지난 94일간 900여명의 음악가들과 만든 ‘제8회 M 클래식 축제’의 피날레 격이다. 콘서트에서 세 사람은 ‘따로 또 같이’ 무대를 꾸민다. 따로 선보일 리사이틀 무대에선 이번 축제의 테마인 프랑스 음악이 기반으로 그것과 대비되거나 영향을 주고 받은 음악가의 곡으로 구성했다.

같이 서는 무대에선 라흐마니노프의 ‘6개의 손을 위한 로망스’를 선보인다. 김도현이 주요 멜로디를 맡는다. 세 사람 모두 이 무대에 대한 기대가 높다. 김도현은 “음악적으로 너무도 훌륭한 연주자들이라 무척 영광”이라고 했다. 대만 출신의 미국계 피아니스트 킷 암스트롱은 “함께 하는 연주자들이 서로 다독이듯이 주고받는 피아노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운 곡”이라며 “ 공연의 주제인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적합한 곡”이라고 말했다.

김도현 “지난 1년은 성장과 진화의 시간”

1년 365일, 52만 5600분의 시간은 오롯이 성장의 날들이었다. 슈베르트, 베토벤, 라흐마니노프, 라벨, 차이콥스키…. 무대 위에서 오간 수백년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누군가의 음악을 만들었다. 김도현에게 지난 일 년은 그 누구보다 ‘오랜 날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일 년 전의 김도현과 지금의 김도현은 완전히 다른 음악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서툴지만, 계속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이렇게 배우는 시기가 제겐 참 귀한 시간인 것 같아요.”

김도현이 국제 무대에서 두각을 보인 것은 불과 5년 사이의 일이다. 2017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 1위 없는 2위,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세미파이널 특별상에 이어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에 올랐다. 그 뒤로 2년, 누구보다 바쁜 날들을 보냈다. 끊이지 않는 러브콜에 쉴 틈 없는 연주 일정이 이어졌다. 올해엔 마포문화재단의 상주음악가 격인 M 아티스트로 선정돼 한 해를 보냈다. M 아티스트로 가진 세 번의 무대를 포함해 다수의 리사이틀과 협연 무대를 거치며 김도현도 함께 진화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마포문화재단이 도입한 올해의 아티스트 제도의 첫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한 달에 많게는 서너 번씩 연주 일정이 이어지는 동안 김도현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만난 스승 세르게이 바바얀과 떨어져 스스로 서는 시간을 가진 덕분이다. 지난 1년은 김도현에게 자신의 음악을 찾기 위해 신중하게 내딛은 여러 걸음들이다.

그는 “어떻게 음악을 느끼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독립에 대한 의지를 키워준 시간”이라며 “무엇보다 무대에서 나의 소리를 듣게 된 것은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이 시간 새롭게 찾은 스승은 바로 ‘김도현 자신’이었다. 그는 “스스로 선생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며 “선생님이 계시지 않으니 의지할 곳은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소리 뿐”이라고 되돌아봤다. 매일의 연습을 녹음해 들어보고 고쳐가며, 스스로의 음악을 만들고 다듬는 시간을 보냈다.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삶의 경험과 거기서 느끼는 내 생각이더라고요. 사소하더라도 많은 경험들이 밑거름이 돼 저의 음악이 된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좌절할 만한 일들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이번 리사이틀에선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작품들과 쇼팽의 ‘12개의 에튀드’로 채웠다. 김도현은 콰르텟을 통해 포레를 향한 애정이 생겼고, ‘레퀴엠’을 반복해 들으며 포레 탐구를 시작했다. 그 시간이 꽤 길었다. 김도현은 “포레는 장르 면에선 쇼팽, 화성적으로 리스트가 시도했을 법한 방식을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로 표현했다”며 “욕심은 없지만,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포레의 음악이 리사이틀을 통해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김도현은 “관객들에겐 낯설 수 있어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학자이자 음악가인 킷 암스트롱 “수학과 음악은 닮았다”

일곱 살에 작곡을 시작한 신동이다. 별칭은 ‘모차르트의 환생’. 대만의 신동 피아니스트의 이력은 독특하다.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에서 학사를 받았고,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화학과 수학을,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물리학을, 파리 6대학에서 수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쯤되면 공부가 ‘취미’라고 할 만하다. 킷 암스트롱(31)은 그러나 ”공부는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의미“라며 ”음악만큼 다른 분야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음악가이면서 학자라는 직업은 피아니스트 킷 암스트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수학과 음악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어요. 수학의 기본이 되는 체계와 논리가 음악에도 반드시 필요하죠. 특히 결과를 향해가는 치열한 과정이야말로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연구의 과정이 깊을수록 희열도 크다는 매력이 비슷하고요.”

킷 암스트롱 [마포문화재단]

킷 암스트롱은 행보는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 만큼이나 다채롭다. 그는 2012년, 고작 스무살의 나이에 프랑스 북부 지역인 이르송의 한 교회를 매입해 작은 연주회를 여는 등 다목적 홀로 이용하고 있다. 그는 교회 공간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신실한 기독교인이라서가 아니라 교회라는 공간은 연주자에게는 매우 친숙한 장소이기 때문”이라며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콘서트홀 대신 교회에서 리사이틀이 자주 열린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은 무려 6년 만이다. 리사이틀에선 바흐의 코랄 전주곡, 생상스의 앨범 모음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6번, 리스트의 크리스마스 트리 모음곡을 들려준다. 2부는 김도현, 타케자와 유토와 함께 하는 무대다.

사실 이번 ‘아시아 3국’ 콘서트가 성사된 데에는 킷 암스트롱의 제안이 있어 가능했다. 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만인으로의 뿌리를 중요한 정체성으로 삼는다.

“두 나라의 뿌리는 저의 삶에 있어 에너지의 원동력이에요. 동양인으로의 오리엔탈적인 감성과 오래 살고 지낸 서양에서 체득된 문화적 정체성은 제가 음악을 하는데 있어 큰 장점으로 작용해왔습니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도 음악가로서의 길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일본의 신성’ 타케자와 유토 “클래식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초대”

“그의 테크닉과 인상적인 연주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이 빠져 들어간다.”

지난 2019년 독일 인터내셔널 텔레콘 베토벤 콩쿠르 무대에 선 22세의 피아니스트 타케자와 유토를 보고 당시 현지 언론이 쏟아낸 찬사다.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한 일본의 ‘신성’은 이날의 콩쿠르로 자신을 입증했다. 이 콩쿠르는 유토가 자신의 음악 인생의 변곡점으로 꼽는 때다. 그를 향한 평가는 유토가 가고자 하는 음악가의 길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와 달리 뭔가 특별한 환상의 세계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 클래식 음악의 큰 특징이에요. 저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의미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 연주를 할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처음 찾는 한국에서도 꿈과 환상, 우주를 유영하는 유토의 연주를 만날 수 있다. 이번 리사이틀에선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 드뷔시 ‘판화’, 메시앙 ‘프렐류드’, 토루 타케미츠비의 ‘나무 스케치 Ⅱ’,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을 연주한다. 1부는 프랑스 음악, 2부는 베토벤의 작품과 같은 독일 음악의 구성이다.

타케자와 유토 [마포문화재단 제공]

특히 그는 “드뷔시의 ‘판화’는 아시아 문화와 서양 음악의 융합을 볼 수 있다”며 “첫 번째 곡 ‘탑( Pagodes)’에선 펜타토닉으로 표현된 동남아시아의 불교적 울림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끌어낸다”고 소개했다. 메시앙의 전주곡은 드뷔시의 음악 어법을 계승한 초기 걸작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리사이틀이 기대가 모아지는 것은 그가 올 한 해 프렌치 바로크 주법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유토는 “그 하나의 성과가 라모의 ‘새로운 클라브생 모음곡’이 될 것”이라며 “현대 피아노에 있어서 고전 주법의 추구를 즐겨주면 좋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베토벤 콩쿠르 출신 답게 유토에게 베토벤은 각별하다. 그는 “베토벤 소나타는 나의 라이프 워크”라며 “우주같은 신비로운 심오함을 겸비한 곡”이라고 했다.

김도현, 킷 암스트롱과 함께 하는 연주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그는 “포핸즈 연주는 경험이 있지만, 식스핸즈는 처음”이라며 “두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내겐 무척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들의 음악에 조화로움을 이뤄가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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