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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서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김홍신 지음/해냄

평생 연락 한 번 없던 나의 생부(生父).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의 임종을 봐야 평생 그리웠지만 미워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아버지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국내 첫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원로인 김홍신 작가가 신작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로 돌아왔다. 지난 2017년 발표한 ‘바람으로 그린 그림’ 이후 6년 만이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국가보안법·반공법이 서슬퍼런 맹위를 떨치던 1970년대 초 군 복무 중 휴전선에서 사살된 북한군 장교에게 인간적인 애도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평생 ‘적인종(赤人種·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치른 한서진 소위의 이야기다.

ROTC 출신인 김 작가는 최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1971년 철책선 부대의 소대장을 하면서 구상한 소설이지만,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내놓게 됐다”고 말했다.

소설 내용 중 일부는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한 소위가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 앞에 십자가를 꽂아준 뒤 육군 보안대에서 조사를 받는데, 이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토대가 됐다. 그는 다만 “나머지 (주인공의 고초는) 모두 허구”라고 덧붙였다.

소설은 한 소위의 친딸인 자인이 수액으로 연명하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가며 시작한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도 잠시, 아버지의 과거가 투영된 유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은 한서진의 친딸인 자인이 유고를 통해 존재도 몰랐던 친아버지의 삶을 이해해 나가는 ‘액자식 구성’으로 쓰였다.

학도군사훈련단(학훈단) 출신인 한서진 소위는 임관한 지 얼마 안돼 남파 간첩단을 소탕한다. 무공 훈장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육군 보안대 조사를 받게 된다. 그 이유는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에 애도를 했다는 이유 때문. 보안대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실향민 출신의 부모님과 호기심에 버리지 못한 북한군 찌라시, 고향집 벽장 깊이 꽂아둔 홍명희의 ‘임꺽정’ 등 모든 정황이 그를 반공분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군사재판 역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한산성’이라 불리는 육군형무소에서 시작된 그의 수감 생활 역시 녹록지 않았다. 같은 방이었던 김 대위와 박 중위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다. 심지어 삶의 유일한 빛이었던 아내 지향은 딸 자인과 함께 다른 남자에게 떠난다.

하지만 그는 드디어 알게 된다. 자신의 형량이 왜 예상보다 높아졌는지, 형무소에서 당한 집단 린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지.... 그의 불행을 사주한 장본인은 바로 사랑하는 가족까지 빼앗아 간 보안대장 이진구 대위였다. 그는 이 대위에 대한 복수심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나간다.

사실 이 이야기는 복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김 작가는 “용서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어떻게 이 대위를 용서하게 되는 지, 그 과정에서 사랑은 어떻게 작용하는 지가 관건이다. 그는 “용서는 자기 자신이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이번 좌우 대립이 심해진 오늘날 용서와 화해, 조화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갈등을 해소하는 밑거름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소연 기자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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