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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00개의 십자가, 그리고 종교적 광기…21세기 오페라의 모습은.
오페라 '노르마' 연출 알렉스 오예
“오페라도 현재와 교감할 수 있어야”
26~29일 예술의전당 공연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노르마’ [예술의전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3500개의 십자가가 무대를 뒤덮고, 하늘 가까이 치솟은 새하얀 고깔을 쓴 사제들이 자리한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오페라 ‘노르마’. 종교의 위압감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무대는 당시 영국에도 꽤나 파격적이었다. 가디언은 이 무대에 대해 “충격적이고, 도발적”이라고 평했다. ‘상상의 산물’인 것처럼 보이는 이 무대가 보여준 것은 허구의 세계는 아니었다. 무대는 무수히 많은 십자가가 세워진 리투아니아의 성당에서 영감을 받았고, 스페인 아이들이 사순절에 입는 현재의 의복을 되살렸다.

“나의 무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있어요. 그렇기에 리스크가 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오페라라는 장르는 과거에 머물게 됩니다. 200년 전 만들어진 오페라를 지금 보면 우스꽝스러워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반영해 그에 맞는 각색이 필요하죠.”

‘벨칸토 오페라’의 정수로 꼽히는 이탈리아 작곡가 벨리니(1801~1835)의 ‘노르마’가 온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노르마’를 초연한 알렉스 오예(63) 감독은 오페라에 장르를 각색한 이유에 대해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알렉스 오예 연출가는 “나의 무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있어 리스크가 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오페라라는 장르는 과거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노르마’는 기원전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프랑스 옛 지명)의 켈트족 여사제 노르마와 적국 수장인 로마 총독 폴리오네의 사랑과 배신, 복수의 전주곡을 다룬 작품이다. 한국 개막을 앞두고 내한한 오예 감독은 연출 방향성에 대해 “종교가 권력을 잡았을 때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광기를 보이는 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스페인 출신으로 인형극을 전공한 오예는 파격적인 연출가다. 그의 무대는 고정된 공연장을 뛰어넘어 폐공장과 폐가, 거리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1980년대엔 작품을 공연에 올릴 때마다 신차 한 대씩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스페인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40년 독재가 끝난 이후, 자유를 갈망하는 사회적 이념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회식 연출은 오예 감독의 연출 인생의 분기점이 됐다. 오페라에 전념한 것은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마누엘 데 파야의 ‘파우스트의 저주’를 통해 데뷔한 이후다.

‘파격’과 ‘실험’의 아이콘인 그의 무대는 로마 시대에 총이 등장하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바지를 입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번 작품 ‘노르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바그너의 말처럼 오페라는 ‘토털 쇼(Total Show)’이자 예술문화 작품”이라며 “과거의 무대엔 관심이 없다. 지금의 오페라는 현재를 살아가는 관객이 교감할 수 있는 무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초연한 ‘노르마’ [예술의전당 제공]

오예가 진두지휘한 작품에서 ‘노르마’는 한 시대의 여성상과 다름 아니다. 그는 “노르마는 엄마이자 애인이며, 여성임에도 권력을 가진 인물로 굉장히 생동감 있는, 살아있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노르마’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는 증오와 광기, 희생이다. 이 복잡다단한 정서들이 ‘종교’라는 거대한 권력과 뒤엉켜 작품을 이끈다.

그는 “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노르마가 많다. ‘노르마’라는 캐릭터의 특성이 현재 여성들과 완벽하게 동일시되진 않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억압받는 여성들이 있다”며 “노르마가 왜 화형에 처했는지 고민했다. (여사제가)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화형에 처할 정도로 잘못된 것이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알렉스 오예 연출가는 “나의 무대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있어 리스크가 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오페라라는 장르는 과거에 머물게 된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과거의 이야기는 현재와 만나 새로운 문제 의식을 제기하고, 또 다른 해석을 낳는다. ‘종교의 시대’가 배경이 됐던 200년 전 작품은 2023년엔 ‘종교 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으로 변화한다.

“종교 권력이 커질 때 빚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현상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노르마라는 캐릭터가 결국 화형에 처해지는 것은 사회적 광기 때문이에요. 그 광기를 내가 경험한 독재와 가톨릭이라는 종교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종교적 믿음이 도가 지나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한국은 첫 방문이지만,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 기대가 높다. 그는 특히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팬이 됐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다 봤다”며 “한국은 처음이지만, 한국 문화를 무척 좋아하고, 한국 문화의 일부를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집중해서 좋은 연출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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