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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톱스타 불러모은 기상천외 ‘백현진쑈’
“내달 1~3일 세종문화회관서 공연
“김고은·장기하 등 80분간 ‘짬뽕쇼’
“출연료는 싸지 않은 내 그림으로
“n잡러? 난 연남동 72년생 아저씨”
가수, 배우, 화가, 작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전방위 아티스트 백현진의 ‘기상천외한 쇼’가 온다. 비디오, 설치미술, 토크쇼, 낭송, 연설, 음악, 토막극 등 20개의 장르를 넘나드는 ‘짬뽕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백현진 쑈: 공개방송’을 “듣도 보도 못한 쇼”라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제 그림이 싸진 않아요. (웃음) 그래서 출연료 대신 그림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배우 김고은 김선영 한예리, 가수 장기하, 코미디언 문상훈.... 아쉬울 것 없는 스타들이 한 사람을 위해 총출동했다. 돈 되는 그림을 파는 작가(PKM갤러리 소속)이고, 홍대 인디신(Scene)의 시작을 함께 한 음악가(어어부 프로젝트, 방백)이며, 온갖 괴랄한(괴이하고 지랄 맞다는 의미의 신조어) 캐릭터를 도맡는 ‘비싼’ 조연 배우인 백현진 때문이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백현진은 “사실 이 공연에서 출연자에게 할당된 돈을 다 합쳐도 어떤 배우 한 사람의 출연료도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인디밴드와 독립영화를 주로 하던 시절 몸에 밴 ‘품앗이’ 문화가 이번 공연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식됐다.

백현진의 ‘기상천외한 쇼’가 온다. 비디오, 설치미술, 토크쇼, 낭송, 연설, 음악, 토막극 등 20개의 장르를 넘나드는 ‘짬뽕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백현진 쑈: 공개방송’(9월 1~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을 “듣도 보도 못한 쇼”로 명명했다.

▶“정신 없는 80분...은유·상징 배제한 짬뽕쇼”=형식부터 신선하다. 여러 장르를 혼합한 ‘짬뽕쇼’다. 백현진은 함께 공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그들은 이름값 만큼이나 바빠 다 같이 모여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모듈이나 레고 블록처럼 따로 있기도 하고, 같이 뭉쳐 있기도 한 형식을 고안했다.

전반부는 짧은 호흡의 콩트로 시작한다.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해 무대를 메운다. 영화 ‘은교’에서 인연을 맺은 김고은은 홀로 독백을, 김선영은 소리를 지르며 연기한다. 한예리는 백현진의 곡을 립싱크로 부른다. 300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에서 세 배우를 한 번에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백현진과 문상훈은 ‘문명’을 주제로 한 토론을 한다. 프로젝트 밴드 ‘벡현진씨’의 음악 공연도 이어진다. ‘동네 주민’(연남동)인 장기하, MZ세대의 힙스터 아이콘 Y2K92도 섭외에 성공했다.

그는 “짧게는 2분, 길게는 7~8분의 공연이 80분 동안 정신없이 돌아간다”며 “한두 가지 메시지나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공연들을 보면 참 말이 많은데, 그게 지겨웠다”며 “ 냉장고를 열면 그냥 ‘시원하다’는 감정이 드는 것처럼 특별한 상징이나 은유가 없는 작업에 집중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상징이나 은유가 없을 때 더 멋대로 생각할 수 있는, 그래서 자유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힘을 준 주제는 있다. 바로 ‘문명’이다. 그는 “문명을 수정, 개선, 발전이라는, 더 나은 것을 향한 개념으로 여겨 사람들이 힘들어진 것 같다”며 “문명은 수정, 개선, 발전이 아니라 단지 변화하고 변경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현진은 이 공연에서 연출, 대본, 무대, 음악까지 도맡았다.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 온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그는 “공연을 관통하는 서사는 없지만, 바이브는 있다”며 “그 때 그 때 집중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엮으면 언어로는 설명이 어렵지만, 내 안에서 어떤 바이브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군가는 도통 모르겠다며 난해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깔깔 웃을수도, 누군가는 펑펑 우는 공연일 수 있다”며 “보는 사람마다 다른 걸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연남동에 혼자 사는 72년생 아저씨”=배우이자 음악가이며 현대 미술가인 백현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후반, 장영규(이날치)와 함께 인디밴드 어어부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백현진의 독창성을 많은 예술가들이 눈여겨봤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것’에 참여한 것도 어어부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현대미술가로서는 지난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배우로의 활약상도 상당하다. 지난 2000년 영화 ‘반칙왕’을 시작으로 온갖 ‘나쁜 놈’ 역은 그가 도맡았다. ‘갑질’의 달인(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었고, 불법 동영상을 유통하는 웹하드 회사 사장(SBS ‘모범택시’)이었으며, 아파트 주민들을 전염병에 걸리게 하는 피부과 의사(tvN ‘해피니스’)이고, ‘짝퉁 나훈아’(‘나쁜 엄마’)였다. 그는 “10~20대에 좋아했던 배우들이 하는 역할과 지금의 내 연기가 비슷한 면이 있다”며 “나이가 정우성 씨와 비슷하다고 해서 내가 그와 같은 역할을 맡을 수는 없지 않나”고 말했다.

“(나에 대한) 적확한 말을 찾아보니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현대미술가는 보이는 것, 음악가는 들리는 것에 대한 일을 하죠. 배우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하고 있고요. 이런 걸 나열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니, 그냥 ‘연남동에 사는 72년생 쥐띠 미혼 아저씨’라고 하게 돼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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