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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은·한예리·장기하 총출동…“출연료는 싸지 않은 내 그림” [인터뷰]
내달 1~3일 세종문화회관 ‘백현진 쑈’
토크쇼ㆍ낭송ㆍ토막극 뒤섞인 ‘짬뽕쇼’
“은유ㆍ상징 배제…관통하는 서사 없어”  

백현진의 ‘기상천외한 쇼’가 온다. 비디오, 설치미술, 토크쇼, 낭송, 연설, 음악, 토막극 등 20개의 장르를 넘나드는 ‘짬뽕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백현진 쇼:공개방송’(9월 1~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을 “듣도 보도 못한 쇼”라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제 그림이 싸진 않아요. (웃음) 그래서 출연료 대신 그림을 선물하기로 했어요.”

배우 김고은 김선영 한예리, 가수 장기하, 코미디언 문상훈…. 아쉬울 것 없는 스타들이 한 사람을 위해 총출동했다. 돈 되는 그림을 파는 작가(PKM갤러리 소속)이고, 홍대 인디신(Scene)의 시작을 함께 한 음악가(어어부 프로젝트, 방백)이며, 온갖 괴랄한(괴이하고 지랄 맞다는 의미의 신조어) 캐릭터를 도맡는 ‘비싼’ 조연 배우인 백현진 때문이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백현진은 “사실 이 공연에서 출연자에게 할당된 돈을 다 합쳐도 어떤 배우 한 사람의 출연료도 되지 않는다”며 웃었다. 인디밴드와 독립영화를 주로 하던 시절 몸에 밴 ‘품앗이’ 문화가 이번 공연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식됐다.

백현진의 ‘기상천외한 쇼’가 온다. 비디오, 설치미술, 토크쇼, 낭송, 연설, 음악, 토막극 등 20개의 장르를 넘나드는 ‘짬뽕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백현진 쇼:공개방송’(9월 1~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을 “듣도 보도 못한 쇼”로 명명했다.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쇼라고 하면 건방진 소리, 우스갯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지만,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공연을 해보려고 해요.”

백현진의 ‘기상천외한 쇼’가 온다. 비디오, 설치미술, 토크쇼, 낭송, 연설, 음악, 토막극 등 20개의 장르를 넘나드는 ‘짬뽕쇼’.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백현진 쇼:공개방송’(9월 1~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을 “듣도 보도 못한 쇼”라고 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정신 없는 80분…은유·상징 배제한 짬뽕쇼”

공연은 형식부터 신선하다. ‘짬뽕쇼’가 된 데엔 이유가 있었다. 공연 준비를 위해 백현진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공연에 참여하는 퍼포머들은 이름값 만큼이나 바빴다. 다 같이 모여 연습할 시간은 엄두도 못 냈다. 그래서 “모듈이나 레고 블록처럼 따로 있기도 하고, 같이 뭉쳐 있기도 한 형식”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전반부는 짧은 호흡의 콩트로 시작한다. 배우들이 한 명씩 등장하게 될 파트다. 영화 ‘은교’에서 인연을 맺은 김고은은 홀로 등장해 독백을 하고, 김선영은 소리를 지르며 연기한다. 한예리는 백현진의 곡을 립싱크로 부른다. 300석 남짓한 작은 공연장에서 세 배우를 한 번에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다. 백현진과 문상훈은 ‘문명’을 주제로 한 토론을 한다. 프로젝트 밴드 ‘벡현진씨’의 음악 공연도 이어진다. ‘동네 주민’(연남동)인 장기하, MZ세대의 힙스터 아이콘 Y2K92도 섭외에 성공했다.

그는 “짧게는 2분, 길게는 7~8분의 공연이 80분동안 정신없이 돌아간다”며 “한두 가지 메시지나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는 없다”고 말했다.

“요즘 공연들을 보면 참 말이 많더라고요. 그게 지겨워서요. 냉장고를 열면, 그냥 ‘시원하다’는 감정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특별한 상징이나 은유가 없는 작업에 집중하고자 했어요. 사람들은 상징이나 은유가 없을 때 더 자기 멋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메타포나 상징을 채우고 말로 설명하면, 언어를 먼저 붙잡게 되니까요. 그것이 정말 관객들이 믿고 본 것일까요? 현대미술을 할 때부터 경계하던 것이라 다른 일을 할 때는 상징이 없는 작업을 하고자 했어요.”

가장 힘을 준 주제는 ‘문명’이다. 백현진이 오래도록 생각해온 ‘문명’에 대한 생각을 ‘쉬운 언어’로 풀어낸다. 그는 “문명을 수정, 개선, 발전이라는 더 나은 것을 향한 개념으로 여겨 사람들이 힘들어진 것 같다”며 “문명은 수정, 개선, 발전하는게 아니라 단지 변화하고 변경되는 것”이라고 했다.

백현진은 이 공연에서 연출, 대본, 무대, 음악까지 도맡았다. 장르와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해온 그의 이력이 녹아든 셈이다.

“공연을 관통하는 서사는 없지만, 바이브는 있어요. 전통적인 서사 같은 것을 정해놓지 않아도, 그 때 그 때 집중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엮으면 언어로는 설명이 어렵지만, 내 안에서 어떤 바이브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누군가는 도통 모르겠다며 난해한 바이브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깔깔 웃는 공연일 수 있고, 누군가는 펑펑 울 수도 있죠. 보는 사람마다 다른 걸 느끼게 될 거예요.”

‘전방위 예술가’로 다방면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기기에 백현진은 스스로를 “연남동에 사는 72년생 쥐띠 미혼 아저씨”라고 부른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내가 생각하는 나는? “연남동에 혼자 사는 72년생 아저씨”

배우이자 음악가이며 현대미술가인 백현진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후반 장영규(이날치)와 함께 인디 밴드 어어부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다. 이 활동을 계기로, 백현진의 독창성을 많은 예술가들이 눈여겨 봤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것’에 참여한 것도 어어부프로젝트가 계기가 됐다. 현대미술가로는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받았다.

배우로의 활약상도 상당하다. 드라마, 영화 속 백현진은 좀 후지다. 2000년 ‘반칙왕’으로 연기를 시작한 이후, 온갖 ‘나쁜 놈’은 도맡았다. ‘갑질’의 달인(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었고, 불법 동영상을 유통하는 웹하드 회사 사장(SBS ‘모범택시’)이었으며, 아파트 주민들을 전염병에 걸리게 하는 피부과 의사(tvN ‘해피니스’)이자, ‘짝퉁 나훈아’(‘나쁜 엄마’)였다. 그는 “10~20대에 좋아한 배우들이 하는 역할과 지금의 내 연기가 비슷한 면도 있다”며 “나이는 정우성 씨와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우성, 브래드 피트 같은 역할을 하면 꼴값이지 않냐”고 했다.

‘전방위 예술가’로 다방면에서 굵직한 흔적을 남기기에 백현진을 수사하는 말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종합예술인, 원조 ‘프로 N잡러’라고 해도 무언가 좀 부족하다. 그는 “연기, 음악, 미술의 영역은 모두 다르지만, 나라는 시스템이 운용되는 것”이라며 “각각의 애플리케이션을 돌릴 때에도 OS는 백현진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설명은 간단하다. “연남동에 사는 72년생 쥐띠 미혼 아저씨”다.

“있어 보이려고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래요. 또 다른 적확한 말을 찾아보니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현대미술가는 보이는 것, 음악가는 레코딩해서 내보낼 때 들리는 것에 대한 일을 하죠. 배우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하고 있고요. 이런 걸 나열하다 보면 말이 많아지니, 그냥 ‘연남동에 사는 72년생 쥐띠 미혼 아저씨’라고 하게 돼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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