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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5% 마법' 위해 술 마시고 수업한 고교 교사들[이현정의 현실 시네마]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더 느긋해지고 침착해진대. 그리고 더 음악적으로, 개방적으로 변한대. 결국 더 대담해진다는 거지."

술자리에 모인 네 명의 덴마크 고등학교 교사들. 이들은 노르웨이의 심리학자 핀 스코르데루가 내놓은 가설에 대해 얘기합니다. '스코르데루의 가설'은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는 실제 가설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는 와인 한 두 잔을 섭취한 수준입니다.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홀로 실험해봅니다.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술을 마신 채 역사 수업을 하죠. 그리고선 다시 모인 동료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굉장해. 정말 놀라워. 정말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 취해있지 않을 때도 뭔가 달라.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수업이 이렇게 잘 되는 건 처음이야."

마르틴의 삶은 실제로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의 삶은 지루함과 무기력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도 재미없고, 학생들과 거리감도 있고, 무엇보다 부부 관계도 좋지 않았죠. 그런데 '0.05%의 마법'으로 유머라곤 1도 없었던 마르틴의 수업이 재밌어지고 아이들에게도 인기 만점의 교사가 됩니다. 가족 관계도 많이 회복됐죠.

마르틴의 후일담을 들은 동료들은 다같이 가설 실험에 나섭니다. 근무시간 동안 최소 0.05%를 유지하되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을 단 채 말이죠.

동료들의 삶도 눈의 띄게 활기가 생깁니다. 동료들 모두 '0.05%의 마법' 효과에 놀라워하죠.

동료들은 더욱 대담해집니다. 각자의 적정 알코올 섭취량은 물론, 술의 한계치까지 실험해보죠. 그러면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칩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20년 선보인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입니다. 우리말로 '한 잔 더'를 의미하죠.

영화는 2020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 후보에 오르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받는 등 각종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는 음주를 권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적당한 알코올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는 가설로 시작하지만 결국 삶의 본질은 '실패를 안는 용기'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실패에 대한 불안을 멀리하기보단 실패 가능성이나 경험을 인정하면 오히려 삶을 살아낼 희망이 있다는 것이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현재에 불만족하는 이들에게 '알코올 0.05%'와 같은 효과를 주는 작품입니다.

마르틴의 동료는 졸업 면접 시험장에서 극도의 불안으로 면접장을 뛰쳐나가는 학생에게 몰래 술 몇 모금을 마시게 합니다. 그리곤 술이 든 물병을 쥐어준 채 면접장에 들어가게 하죠. 면접에서 키에르케고어의 ‘불안’ 개념에 대한 질문을 받은 학생은 술이 든 물병을 벌컥 마시고선 이렇게 대답합니다.

“키에르케고어는 불안을 '실패'라는 관념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고 했죠. 중요한 건 과거의 실패에요. 타인과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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