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죠”
홍수진·수경 자매, 엘베케어 ‘가족 앙상블’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 내한공연
“손에 딱 맞는 장갑이자 퍼즐같은 연주”
5년 만에 내한 공연을 갖는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 [롯데문화재단 제공]

무언(無言)의 시간에도 눈빛은 통했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으로 묶인 듯, 눈빛 만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었다. 어지럽게 흩어져도 제 자리를 찾는 퍼즐처럼 트리오는 서로가 서로에게 “딱 맞는 장갑”(홍수경)이다.

“트리오의 씨앗이 뿌려진 건 비엔나 유학 시절이던 1997년이었어요. 동생 수경(첼로)이 옌스(피아노)와 함께 듀엣을 하고, 연애도 시작한 것이 트리오로 발전한 계기였어요. 옌스의 평생 꿈이 트리오였는데 옆에 걸리적거리던 제가 보였나 봐요.(웃음)” (홍수진)

한국인 최초 덴마크 국립 오케스트라 종신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홍수진(46)과 첼로 수석 홍수경(46) 자매, 그리고 홍수경의 남편인 피아니스트 옌스 엘베케어. 세 사람은 지난 1999년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을 결성했다. 함께 음악을 해온 시간만 25년. 결성 이후 독일 ARD 국제 음악 콩쿠르를 비롯한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700회가 넘는 공연을 해왔다.

5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화상 인터뷰로 만난 홍수진은 “콩쿠르를 목적으로 시작된 트리오인데, 처음 연주하던 날 퍼즐을 맞춘 것처럼 잘 맞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자매·부부가 만나 트리오로...“마법 같은 교감”=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의 슬로건은 세 사람의 ‘관계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투 플러스 투 링크 어스 쓰리(two plus two link us three)’. 홍수경은 “오랫동안 함께 음악을 해온 자매와 부부라는 두 개의 부호가 만나 트리오로 연결된 것”이라며 “콩쿠르를 통한 성공의 경험이 쌓이고 서로의 케미스트리를 확인하며 오랜 시간 트리오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족이면서 ‘음악적 동료’인 세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은 서로에게 매순간 감동을 새긴다.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할 때 우리 세 사람은 큰 무리의 동물들이 모여 사냥하고 이동하는 것처럼 함께 움직여요.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죠. 이 순간 마법 같은 느낌을 받아요.” (옌스 엘베케어)

가족 앙상블의 장점은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다. 1977년생, 같은 해 1월과 11월에 태어나 날 때부터 서로의 음악을 들어온 홍자매와 오랜 음악적 동료인 엘베케어는 닮은 듯 다른 기질로 서로의 거울이 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를 모르는 불사조이자 ‘행동하는 긍정주의자’인 옌스 엘베케어, 모든 일에 있어 완벽주의자인 홍수경,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외교관 역할의 홍수진은 서로를 채워가며 트리오의 비전을 만들었다.

함께 해온 ‘시간의 길이’는 트리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홍수진은 “인생의 소중하고 기쁜 기억, 슬픔까지도 함께 나누며 그 감정들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감정의 공유는 무대 위에서 한 호흡으로 묻어난다. 물론 가족이기에 일과 생활의 구분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홍수경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사생활과 일을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다”면서 “그럼에도 음악은 일이 아닌 삶이기에 서로 엉키고 설켜 하모니와 불협화음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트리오 활동과 물론, 개인적 음악 활동에도 중요한 가치를 둔다. 각자의 음악 활동은 다시 트리오의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홍수진·홍수경은 덴마크 국립 오케스트라에서 각각 20년, 15년째 몸담고 있다. 옌스 엘베케어는 덴마크 왕립 음악원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홍수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시간도 없이 연습만 해야 하는 날이 많기에 앙상블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병행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며 “하지만 어느 한 쪽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고 말했다. 홍수경은 “가족 앙상블이기에 우리 세 사람만 보고 음악을 하는 것은 시야가 갇힐 수 있다”며 “서로 다른 일을 하며 여러 사람과 영감을 주고 받으며 음악을 발전해나갈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25년간 갈고 닦은 다이아몬드 같은 정체성=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의 25년은 이들만의 정체성과 색깔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엘베케어는 “오랜 시간 갈고 닦아 찬란한 빛을 내는 다이아몬드처럼 지난 25년을 보내며 우리만의 정체성을 만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선 지난 시간 정성스럽게 세공한 그들의 주무기를 꺼낸다. 14일에 열리는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 공연에선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제1번, 차이콥스키 피아노 트리오를 연주한다. 16일 인천시향과의 협연에선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들려준다. 엘베케어는 “매공연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토리가 될 수 있는 레퍼토리를 짜고 있다”며 “같은 시대에 태어난 브람스와 차이콥스키는 서로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말년에는 서로 존중하게 됐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선곡은 트리오와도 인연이 깊다. 홍수진은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1번은 스무 살 브람스의 열정과 35년 후 거장이 된 브람스의 손길이 한 곡에 함께 담겨 있는 곡으로, 초창기 때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다”며 “여러 번의 ‘숙성 과정’을 거쳐 우리만의 유니크한 해석을 꾸준히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엘베케어는 “음악에는 한계도 완성도 없다”며 “한 해 한 해 더할수록 깊은 해석과 이해를 더하기에 해마다 다른 음악을 들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트리오의 목표도 오랜 세월 단련된 다이아몬드처럼 다채로운 색깔을 내는 음악을 하는 것이라는 게 엘베케어의 설명이다.

트리오 콘 브리오 코펜하겐은 이들의 음악에 “자신들의 귀를 선물해준”(옌스 엘베케어) 청중과 함께 스물 다섯 해를 보냈다. 홍수진은 “결국 음악을 향한 공통된 마음이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비결”이라고 했다.

“음악을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음악은 자신의 인생을 다 쏟아넣는 것이기에 삶과 음악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요. 우리 세 사람 저마다의 선택으로 귀결된 일이니,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싶어요. (웃음)” (홍수경)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