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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루한 건물들 세상...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다
문화역서울 284, 토마스 헤더윅 ‘감성을 빚다’展
순수한 아이디어·인간적 디테일 중시 창조적 건축가
강원도 설해원 ‘더 코어’·서울 노들섬 ‘소리풍경’ 공개
토마스 헤더윅

“저는 항상 영혼이 없는 디자인과 영혼이 있는 디자인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어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천편일률적인 건물을 볼 때마다 왜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접근 방법에서 출발해요. 특이한 것을 찾았을 때, 그것에 대한 가치부터 생각해봅니다”(토마스 헤더윅, 2018 헤럴드디자인포럼)

그가 찾은 ‘특이한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해 의외라 생각되기도 한다. 알루미늄 막대의 토출하는 방식을 보고 이것을 크게 키워 의자로 제작하고, 어릴 적 어머니가 단추를 달던 것에서 착안해 ‘씨앗 성당’이 됐다. 바다의 파도가 그린 모래사장 위의 흔적이 벽면의 물결이 됐고, 곡식을 저장하던 사일로는 그곳에 쌓여있던 알곡 모양으로 파내 미술관으로 활용된다.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는 ‘헤더윅 스튜디오:감성을 빚다’전시전경

‘우리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토마스 헤더윅의 30개 프로젝트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오는 9월 5일까지 문화역284에서 열린다. 도쿄 모리미술관에 이은 순회전이지만, 그곳에서 선보이지 않았던 2개의 작품이 추가됐다. 강원도의 설해원 부지에 건축중인 ‘더 코어’(The core)와 서울 노들섬의 ‘소리풍경’이 그것이다. 전시는 ‘공존하다’, ‘조각적 공간’, ‘도심 속의 자연’, ‘감성의 공유’, ‘과거를 담은 미래’, ‘사용과 놀이’, ‘샘플과 스케치’라는 7개 키워드로 경계도 규칙도 없이, 아이디어만으로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창조하는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사고방식을 유영한다.

더 코어, 강원도

토마스 헤더윅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던 프로젝트 ‘씨앗 성당’은 ‘공존’이라는 키워드로 풀이된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관 디자인을 맡은 헤더윅 스튜디오는 영국 왕립 식물원 큐가든의 밀레니엄 시드뱅크에서 영감을 얻었다. 바람에 살랑이는 긴 풀처럼 미풍에 부드럽게 흔들리는 외관을 머리카락 형태의 아크릴 막대기로 표현했다. 막대기의 내외부 끝에는 총 25만개의 씨앗을 담았고, 빛이 아크릴 막대를 투과해 건물 내부를 비추면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냈다. 덕분에 영국관은 엑스포 최우수상인 디자인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의 베슬(Vessle)은 낙후 지역이었으나 최근 개발로 재탄생한 허드슨 야드의 상징적 조형물이다. ‘조각적 공간’이 키워드다. 공공 시설물인 16층 높이의 이 조형물은 원래 시민들이 자유롭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허드슨강과 맨하튼을 조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만 안전사고 때문에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상태다. 그럼에도 새로운 허드슨 야드의 상징물로 꼽힌다. 인도 라자스탄 계단식 우물에서 영감을 받은 건물 외형이 너무나 독특한데다 가공되지 않은 강철로 만들어져 번쩍이고 반사하는 금속 재질이 주변 풍경을 흡수하고 또 확장시켜 눈을 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리틀 아일랜드, 뉴욕

‘도심 속의 자연’ 키워드 대표작은 뉴욕에 있는 ‘리틀 아일랜드’가 꼽힌다. 이곳은 맨해튼 남서쪽 강변에 만든 새로운 부두로, 헤더윅 스투디오는 기존 허드슨 강 밖으로 튀어나온 수 백개의 오래된 나무말뚝에서 착안해 콘크리트 기둥 위에 작은 섬을 만들었다. 거대한 깔대기 모양의 기둥이 여러 개 모여 서로 다른 높이에서 조합하며 공공정원과 야외 극장, 소규모 공연장을 품어낸다.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의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은 한때 유명한 곡물 저장고로, 남아프리카 전역의 옥수수를 저장하고 등급을 매기던 곳이었다. 컨테이너 운송 사업이 활발해지자 더 이상 저장고의 역할이 필요 없어졌고, 해당 건물은 오랜 기간 방치된 상태였다.

헤더윅 스튜디오는 건물 전체를 철거하지 않고 저장고의 산업적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콘크리트 원통 구조물을 옥수수 낱알 모양으로 깎아냈다. 기존의 상호 교차된 기하학적 형태가 겉으로 드러나며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미감을 선사한다. 아프리카 최초의 현대 미술관으로, 오헨 자이츠와 자이츠 재단이 소장한 현대미술 컬렉션의 상설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앉으면 팽이처럼 뱅그르르 돌아가는 의자나, 인원수에 맞게 자유롭게 형태를 변형하는 탁자도 토마스 헤더윅의 프로젝트들이다. 대학원 시절부터 고민했던 아이디어들이 제품으로 완성된 경우다.

흥미로운 건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그의 아이디어들의 출발이 작은 드로잉이라는 점이다. 전시장에서도 프로젝트의 원형에 해당하는 스케치들을 구경할 수 있다. 헤더윅은 “작업하다 생각이 막히고 프로젝트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느끼면 포스트잇 쪽지에 그린 가장 작은 드로잉으로 돌아가 원점부터 검토한다”며 “가장 순수한 아이디어를 확인한 뒤, 이를 어떻게 현실화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문제가 쉽게 풀린다”고 말한다. 건축가라기 보다 창조적 디자이너다운 발상이다.

노들섬 소리풍경

그래서일까. 그가 제안한 노들섬 ‘소리풍경’은 다른 메트로폴리탄의 구조물과 다른 서울만의 특징을 담았다. 높은 산으로 둘러 쌓였으나 큰 강이 흐르는 서울. K-팝으로 위시되는 K-컬쳐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노들섬을 포지셔닝한다. 소리의 파장을 연상시키는 물결치는 모습에 산을 담아내며 시각적 구도를 연출한다. 기존의 다리와 구조, 하부적 구조물을 재사용해 지속가능성과 역사적 연계까지 추구한다. 서울시가 개최한 국제디자인 공모전에서 선정된 7개안 중 하나다. 다만 건축비까지 1조 5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돼 서울시가 선뜻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가 바라는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적 건축’으로 요약된다. 그는 “많은 건축가가 건축에서 장식적 요소를 거의 금기시하면서 장식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건축업계는 계속해서 개성없는 건물을 끝없이 짓고 있는 것”이라며 “덕분에 대부분 사람은 건물이 지루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인간적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재미있는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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