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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윤찬 스승’ 손민수와 마지막 수업…“K-클래식 교육, 궁금했다” 
17일간의 KNSO국제아카데미
전 세계 19개국 52명 연주자
“한국 클래식 교육 궁금해 참가”
‘임윤찬 스승’ 손민수와 협엽
손 “음악에 반응하고 화합한 순간”
전 세계 19개국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52명의 연주자들이 2023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만났다. 이들의 마지막 수업은 K-클래식 스타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와의 협연이었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본 적 없던 52명의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 섰다. “한국의 음악 교육이 궁금하다”며 전 세계에서 날아온 음악가들이다. 3주간 이어진 KNSO국제아카데미의 ‘마지막 수업’은 K-클래식 스타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함께였다.

이들에겐 세 번의 리허설 시간이 주어졌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유일한 단조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제3번 다단조 Op.37). 손민수는 “리허설마다 매번 완전히 다른 오케스트라와 만나는 느낌이 들 만큼 서로의 음악에 즉각 반응하고 화합하는 순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짧은 여정은 지난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관객과의 만남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저마다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도록 하는” 손민수의 교육관이 오케스트라의 개성을 살렸다. 이날 연주회는 올 가을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부임하는 손민수의 마지막 한국 공연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KNSO국제아카데미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은 신 시한(29·바이올린)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공부한 우리가 하나의 악단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며 “하지만 그 어려움 역시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 교육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오합지졸이 모여 다함께 연주한다는 점일 것 같다”고 말했다.

KNSO국제아카데미에 참여한 네덜란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신 시한(왼쪽부터)과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 출신 첼리스트 앙헬 미구엘, 인도네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는 아르야 푸갈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17일간의 수업…렉처부터 신체 워크숍까지

전 세계 19개국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전도유망한 음악가들이 한국으로 모였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음악 인재 육성을 위해 열고 있는 ‘KNSO국제아카데미’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아카데미는 지난 3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 17일간 이어졌다. 52명의 참가자 가운데 절반인 26명은 국외 연주자들이었다.

베네수엘라 음악 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저소득층 청소년을 위한 무료 음악 교육 프로그램) 출신으로 현재 할리스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앙헬 미구엘(30·첼로)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 음악가들을 워낙 많이 보며, 수준 높은 음악을 듣다 보니 한국 음악 교육이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3주간의 수업은 다양한 커리큘럼이 채워졌다. 실내악, 관현악 무대를 비롯해 지휘자 폴 다니엘, 작곡가 정현수의 렉처와 일대일 멘토링 시간도 가졌다. 독일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 수석을 역임, 현재 서울대에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첼리스트 김두민도 멘토로 힘을 보탰다.

전 세계 19개국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52명의 연주자들이 2023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만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흥미로운 수업도 있었다. 취리히 예술대학의 음악 생리학 교수이자 호르니스트인 미샤 그로일의 정신, 신체 관리 워크숍이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연주 전 명상과 몸풀기를 통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시간을 갖고, 손목, 등, 허리, 어깨 스트레칭으로 몸을 관리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고정된 자세로 평생을 연주만 해오는 음악가들에게 고질적으로 따라오는 직업병을 바로잡고, 지속가능한 연주를 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신 시한은 “공부벌레처럼 앉아서 연주만 하는 음악가들 역시 스포츠 선수들처럼 멘탈 관리와 물리치료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음악원에선 이런 수업을 들을 수 없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명문 대학인 반둥공과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 음악의 길을 걷고 있는 아르야 푸갈라(33, 바이올린·작곡)도 “정식 음악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시작하다 보니, 신경통이 생기는 등 나의 연주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꾸준한 연주 활동을 위해 선수들과 같은 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해준 수업이었다”고 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연주회의 과정은 아카데미의 의미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참가자들과 만난 손민수는 “최고의 음악을 헌신적으로 추구해나가는 음악가 본연의 모습을 잃지 말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눔과 인간애(compassion)”라는 조언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전 세계 19개국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52명의 연주자들이 2023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만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 K-클래식 교육을 엿보다

아카데미에서의 경험은 한국 음악가들의 강점과 음악 교육을 조금은 엿보는 계기가 됐다. 참가자들은 한국 클래식의 강점과 특징을 “탄탄한 기초와 정교한 연주, 엄격한 교육 시스템”이라고 꼽았다.

신 시한은 “독일에서도 한국 출신 음악가들을 많이 본다. 놀랄 정도로 훌륭한 음악가들이고, 다들 기초가 탄탄하다”며 “오차 없이 정확하고 정교한 연주를 하면서도 내 개성을 어떻게 가미할 것인지를 알고 연주한다”고 말했다. 아르야 역시 “한국인 음악가들은 기초가 탄탄하다 보니 새로운 문제나 당혹스러운 상황이 생겼을 때도 해결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K-클래식 교육’이었다.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참가자들과 만난 손민수는 “외국에서 한국의 음악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한국 음악가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음악 교육의 강점은 세 가지다. ‘엄격한 수련(discipline)’, ‘부모의 헌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이다. 손민수는 “한국 음악가들은 어려서부터 악기를 배우며 몸에 밴 훈육으로 흔들리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 피워 나간다”며 “이 세 가지가 더해지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전 세계 19개국에서 5대 1의 경쟁률을 뚫은 52명의 연주자들이 2023 KNSO국제아카데미를 통해 만났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세 참가자들도 아카데미를 통해 ‘성실한 완벽주의’에서 나오는 강점을 확인했다. 앙헬 미구엘은 “베네수엘라에선 악기 소리만 내면 오케스트라에 내던져 지는 반면 한국은 오랜 시간 기초를 닦은 뒤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어야 단원이 된다”며 “악기를 다루고 음악을 배우는 것부터 의자에 앉는 자세,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서 철칙을 세워 교육하는 시스템이어서 흐트러짐이 없다”고 봤다. 미구엘의 말에 신 시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자랐지만, 어머니는 항상 연습을 할 거면 대충하지 말고 정해진 시간을 모두 채운 뒤 나가 놀라고 했다”며 ‘한국식 교육’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미구엘은 신 시한의 이야기에 활짝 웃으며 “우린 완전히 반대였다. 부모님께선 제발 연습 좀 그만하고 놀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며 “한국에선 이런 체계화된 시스템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음악가들의 아카데미는 만남 자체로 성장의 기회가 됐다. 미구엘은 “이곳에서 매번 다른 스승을 만나 들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너무나 큰 배움이 됐고, 다른 환경에서 다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것을 흡수하고 교류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고 돌아봤다. 멘토들도 KNSO 국제아카데미의 긍정적인 점을 발견했다. 손민수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인간을 화합하는 것”이라며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국제 아카데미 같은 프로젝트가 한국에 더 활발히 생겨나길 바란다”고 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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