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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팬데믹 이후,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는? [K-뮤지컬 시대]
코로나19 보낸 뮤지컬 본토
관객 젊어지고, 대작만 인기
모험 대신 익숙함 찾는 관객
OTT는 공연장의 최대 경쟁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최초의 뮤지컬 ‘MJ’ [Matthew Murphy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관객 확장, #신작 흥행, #다양성 확보.

뮤지컬 본고장 브로드웨이에 코로나19는 혹독했다. 한국은 팬데믹 동안에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연을 올리는 나라였으나, 본토의 사정은 달랐다. 코로나19가 당도한 이후, 브로드웨이는 ‘셧 다운’ 체제를 유지했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을 이겨내고 ‘엔데믹 시대’에 접어든 현재, 전 세계 공연계는 새로운 과제를 직면하고 있다.

최근 열린 ‘K-뮤지컬국제마켓’ 참석을 위해 방한한 수 프로스트 미국 정크야드 도그 프로덕션 프로듀서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극장은 다시 문을 열었지만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2022-23 시즌은 코로나 이후 본격적으로 돌아온 브로드웨이의 첫 시즌이다. 2021-22 시즌의 총 매출은 8억 4500만 달러, 관객수는 670만 명. 이번 시즌(1230만 명)의 절반 수준이다.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역사상 최정상 시기에 있던 2018-19 시즌은 18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당시 관객수는 1480만 명이었다. 수 프로스트는 “여전히 회복 중인 상황이다. 관객수는 88% 정도 회복했으나, 12%의 잃어버린 관객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웨스트엔드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런던 웨스트엔드와 에든버러에서 공연장을 운영하고 있는 플레전스 극장의 닉 코너튼 대표는 “박스 오피스는 안정권에 접어들었지만, 대규모 할인이 수반돼 매출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극장의 재개관에도 불구하고 많은 극장이 폐관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로 물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급증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웨스트엔드의 티켓 가격은 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48파운드(한화 약 8만원)까지 떨어졌다는 점은 이곳만의 특이점이다.

개막을 앞두고 있는 박강현 주연의 뮤지컬 '멤피스'의 원작 제작사인 미국 정크야드 도그 프로덕션 프로듀서인 수 프로스트가 최근 K-국제뮤지컬마켓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팬데믹 이후 뮤지컬 본고장에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대작’, ‘스테디셀러’가 브로드웨이의 성공작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해밀턴’, ‘위키드’, ‘라이언킹’과 같은 작품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생애를 다룬 최초의 뮤지컬 ‘MJ’, 브로드웨이에선 ‘카탈로그쇼’로 불리는 주크박스 뮤지컬 ‘앤 줄리엣’은 익숙한 넘버 덕분에 사랑받은 작품이다. 특히 ‘MJ’는 CJ ENM이 공동 프로듀싱에 참여, 제75회 토니어워즈에서 남우주연상, 안무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은 과거에 대한 향수로 폭발적인 티켓 판매를 보여줬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관객 동원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수 프로스트는 “대중이 낯선 작품에 대해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며 “브로드웨이는 새로운 스토리와 목소리가 생명인데, 관객들은 현재 위험을 감수하며 굳이 신작이라는 미지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신작이 흥행을 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관객들이 부쩍 늘었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기성세대에서도 관람은 증가했지만, 코로나19 여파에 대한 우려로 비교적 젊은 층으로 주요 관객층이 이동했다. 특히 뉴욕 인근에 거주하거나, 도시 밖에서 오던 관객들은 브로드웨이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뉴욕이 ‘안전한 도시’라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헨리 8세 여섯 왕비의 이야기를 담은 ‘식스 더 뮤지컬’은 2017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통해 첫 선을 보인 이후, 2019년 웨스트엔드, 2020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며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 [클립서비스, Manuel Harlan 제공]

젊은 층의 등장으로 인해 이름 없는 신작이 빛을 보기도 했다. 중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공연한 ‘식스’다. 다만 수 프로스트 프로듀서는 “팬데믹 시기에 흥행한 미디어와 실황 음원으로 인해 작품과 노래에 익숙해진 젊은 층에서 많은 관람이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웨스트엔드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닉 코너튼 대표는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에 독점했던 대형 제작자들과 대기업들이 장기상연을 중단하면서 신흥 제작사들이 웨스트엔드에서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얻어 제작자 풀이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도 늘었다. 영국에선 현재 “피칭 행사를 통해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있으며, 2023년엔 약 50여개의 피칭이 이뤄져 일부 뮤지컬은 개발 중”이라고 했다.

팬데믹 이후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를 비롯한 전 세계 극장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OTT가 꼽히고 있다. 수 프로스트는 “넷플릭스 등 안방극장에 익숙해진 교외지역 관객들이 브로드웨이에 돌아오길 주저하고 있다”며 “우리가 잃어버린 관객을 되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브로드웨이의 중요한 ‘고객’이었던 중국 관광객의 회복이 더디게 나타나고 있다. 수 프로스트는 “중국 관광객이 주요 소비층으로 브로드웨이 공연을 보는 것이 ‘여행 리스트’에 올라있지만, 이들은 뮤지컬을 보기 위해 브로드웨이에 오는 관객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지 전문가들은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당분간 빅네임과 빅브랜드 쇼가 시장을 견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어진 과제는 새로운 관객의 개발이다. 수 프로스트 프로듀서는 “스트리밍 플랫폼이 극장을 대체할 수는 없다”며 “다양한 관객들을 데려오기 위해 브로드웨이가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관객, 지역사회에서 소구하지 않았던 관객에게도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의 개발과 마케팅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닉 코너튼 대표 역시 “상업적인 대극장 중심의 작품만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극장을 활용해 어떻게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야 할 지 고민해야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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