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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불법 파업 만성화 불러올 대법원의 탁상 판결

불법 파업으로 피해를 본 기업이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노조원 각자의 가담 정도에 따라 개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이는 여권과 재계가 극력 반대하는 가운데 야당과 노조가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의 핵심 조항과 같은 취지여서 커다란 후폭풍이 우려된다.

이번 사건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2010년 11~12월 울산공장 1, 2라인을 점거하면서 278시간 동안 생산이 중단되자 현대차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노조원들을 상대로 낸 것이다. 1, 2심은 노조원들이 파업으로 인한 전체 손해액(271억원) 중 50%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면서 현대차가 청구한 20억원을 노조원들이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5일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 책임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면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며 “개별 조합원에 대해서는 노조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노란봉투법 취지와 다르지 않다.

대법원의 판결은 일견 공정이라는 보편적 기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업 현장의 특성상 조합원들의 개별 불법행위를 일일이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모르는 책상머리 판결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파업 공장 관리자들이 증거 수집을 위해 촬영하면 노조원이 휴대전화를 빼앗거나 폭행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실제 파업 현장이다. 복면을 쓰고 CCTV를 가리며 기물을 부수거나 시설을 점거하는 행위가 빈발하는 현장에서 참가자의 신원과 불법 가담 정도를 가려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불법파업이 사전예고 없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민법이 개별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집단적 불법행위에 연대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통과 뒤 본회의에 직회부돼 6월 임시국회에서 표결을 앞두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이 노란봉투법 입법 필요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야권은 입법 동력을 얻었다며 밀어붙일 태세다. 대법원의 판결이 입법권 폭주→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이어지는 정치 난맥상을 부추긴 결과가 됐다. 심지어 주심 재판관인 노정희 대법관의 진보적 성향을 들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비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판결이 위험천만한 것은 불법 책임 모호성으로 파업 만성화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진영논리를 떠나 현장에서 작동할 합리적 노동법을 만드는 데에 여야가 머리를 맛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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