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23일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이하 국조)에 전격 합의했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조 이후 6년 만이다. 천재지변도, 건물붕괴도 아닌 군중 밀집으로 꽃다운 생명 158명이 희생된 충격적 사안이라는 점에서 10·29 참사 국조는 국회의 피할 수 없는 책무다. 참사 발생 원인과 법적 책임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재난 안전과 관련한 국가 컨트롤타워의 작동 여부와 제도적 맹점을 들여다보는 국조가 병행돼야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여야의 대치로 자칫 의회 권력을 쥔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반쪽 국조가 될 뻔했는데 막판에 타협점을 찾아 생산적 국회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도 고무적이다. 특히 ‘예산안 처리 후 국조’ 실시는 예산 쟁점을 둘러싼 여야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다음달 2일 법정 처리 시한을 넘길 것으로 우려된 상황을 돌파할 발판이다. 여야가 정책협의체를 구성해 여성가족부 개편과 보훈처 격상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논의키로 한 것, 국회 내에 인구위기·기후위기·첨단전략산업 특위를 구성하기로 한 것도 긍정적이다. 국조 합의가 불러온 나비효과로 민생과 경제를 위한 여야의 협치가 더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태원 국조는 국민 70%가 국조를 찬성하는 압도적 여론, 그리고 지난 22일 참사 희생 유가족들의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 기자회견이 바탕이 됐다. 45일간의 국조가 허투루 낭비되지 않아야 할 이유다. 수사기관과 달리 국회는 강제조사권이 없는 만큼, 정부·여당의 성실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국가안보실 국가위기관리센터, 행정안전부는 이번 참사를 재난안전 백년대계의 뼈대를 세우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 여망에 부합하도록 자료 제출에 협조해야 한다. 여당도 정권 방어에만 급급한 소아적 태도를 버리고 진실규명이라는 대의에 충실해야 한다. 야당도 국가적 참사를 정권 심판에 이용하려는 정략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국조가 진실 규명을 위한 과학적 추궁보다 ‘호통’만 난무해 국민적 피로감만 키웠다는 점을 자성해야 한다.
우리는 이태원 참사 이전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 세월호 등 대형 국가적 재난을 겪었다. 세월호만 해도 90일간의 국조 외에 국가기관 조사만 8년간 9차례 했지만 해양 사고는 줄지 않았고 안전 시스템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근본적 원인을 찾기보다 책임 추궁에 매몰됐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재발방지 대책에 역점을 두는 국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