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출신 김용범·최희문 영입 대박
고금리·불황에 공격경영 어려워져
지배구조 절묘하게 바꿔 위험 대비
지주만 상장…위험반영>프리미엄
화재·증권 주가 하루만에 하락반전
최근 시장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메리츠금융 조정호 회장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한진그룹 창업자인 고 조중훈 회장의 4남이다. 장남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차남 조남호 회장은 한진해운, 3남 조수호 회장은 한진중공업을 각각 물려 받았다.
조정호 회장의 몫은 손해보험사인 동양화재와 한일증권이었다. 국내 대기업이 대부분 제조업 기반인 만큼 금융업은 ‘막내’가 맡는 경우가 많다. 현대해상 정몽윤 회장, 옛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구자준 전 부회장이 그렇다. 주력 기업 승계 서열에서 밀리는 딸이 맡는 경우도 있었다. 제일화재(현 한화손보) 김영혜 전 이사회의장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현대커머셜 정명이 사장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누나다.
조 회장의 부인 구명진 씨도 ‘재벌집 딸’이다. 아워홈 구자학 회장과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의 차녀인 이숙희 씨 사이 1남 3녀 중 차녀다. 구 씨는 현재 아워홈 경영을 맡고 있는 ‘막내’ 구지은 부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구 부회장은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과 큰언니인 구미현 전 이사와의 경영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은 상태다. 구명진 씨의 지분 19.6%는 아워홈 경영권 경쟁에서 아주 중요하다.
1997년 한진투자증권, 2000년 동양화재 최고경영자를 맡은 이후 조 회장의 행보는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변곡점은 2010년과 2011년이다. 삼성 출신 김용범·최희문 부회장을 영입하면서 공격적인 자산운용으로 이익이 급성장 한다. 2011년에는 메리츠화재를 인적분할해 메리츠금융을 설립하며 21%이던 지배력을 돈 한푼 안 들이고 75%까지 높인다.
보험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안정이 우선이던 금융권 관행과 달리 공격적인 운용전략을 펼치는 메리츠에 불안한 시선을 보냈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이익은 계속 늘어났고 기업가치는 높아졌다. 현재 메리츠금융 시총은 한진그룹을 앞선다. 국내 대기업 가문 가운데 비주력 부문을 맡아 본가를 뛰어넘은 이는 조 회장이 거의 유일하다.
메리츠금융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상장을 폐지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그 동안 남다른 경영전략으로 승승장구하던 조 회장이 새로운 도전을 마주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주주 대비 조 회장에 유리한 개편작업이지만, 결국엔 새로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 변경이기 때문이다.
메리츠금융의 완전자회사 편입 재료에 22일 상한가를 기록했던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주가가 하루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메리츠금융이 만든 ‘교묘한’ 구조가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받는 모습이다. 혼란을 피해 지배구조 개편 전을 메리츠금융, 개편후를 메리츠지주(가칭)로 이름 붙여 살펴보자.
지금의 메리츠화재·증권 주식은 메리츠지주 주식으로 바뀐 후의 가치를 반영한다. 자회사 지분율이 높아진 메리츠지주의 기업가치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증권가의 전망은 시가총액 8조원이다. 개편 발표 전인 21일 종가기준 10조원 보다 낮다.
메리츠지주 시총이 8조원이 된다고 가정해 계산해보면 주식교환이 될 메리츠화재·증권의 가치는 각각 4만7572원, 6041원이다. 메리츠지주 시총이 이 보다 낮아진다면 메리츠화재·증권 주가도 낮아진다. 다만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인 3만2793원, 4109원 아래로는 떨어지기 어렵다.
3분기말 자본을 개편안 발표 전인 21일 주가로 따지면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따지면 메리츠금융 0.6배, 메리츠화재 6.5배, 메리츠증권 0.5배다. 3분기 말 메리츠금융 자본은 연결기준 5조5505억원, 별도기준 1조6802억원이다. 자회사 분이 약 3조9000억원이다. 화재와 증권이 완전자회사가 되면 메리츠지주의 연결기준 자본은 9~10조원이다.
완전자회사만 보유한 국내 금융지주들의 PBR은 0.5배 안팎이다. 메리츠금융은 그동안 자회사가 상장돼 있지만 워낙에 수익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값이 인정됐다. 증권가 전망인 메리츠지주 기업가치 8조원은 자본효율화로 PBR 값이 지금보다 높아질 것이란 기대까지 반영한 수치인 셈이다. 메리츠화재의 잠재위험을 감안하면 메리츠지주에 높은 PBR을 부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의 가장 큰 동기는 메리츠화재의 자본보강이다. 올해 채권 등 자산 손실(기타포괄손익)로 지난해 말 2조4000억원에 육박하던 자본이 6200억원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내년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17이 적용되면 자본이 상당부분 회복될 것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거시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당분간 시장금리가 높은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커서 과거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한 채권의 평가손실이 자본항목에 상당기간 부담으로 남을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덩치가 두배나 큰 DB손해보험이나 현대해상 대비 독보적이던 영업부문 수익성도 장담이 어려운 상황이다. 메리츠화재 수익성의 비결은 자동차보험 같은 돈 잘 안되는 보험부문은 최소화하고 자산운용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접근이다. 대표적인 게 중소기업 대출이다.
올 3분기까지 메리츠화재는 운용자산 24조원 가운데 37%를 대출로 운용해 8.17%의 이익률을 기록했다. 대출의 88%가 중소기업 대출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rr관련으로 이자율이 8.7%에 달한다. 대기업(5.9%), 개인(4.2%) 대비 월등히 높다.
DB손해보험은 운용자산 41조6000억원 가운데 대출로 12조5600억원을 운용한다. 중소기업 대출은 약 5조4000억원으로 약 43%다. 평균 이자율은 4.72%로 메리츠화재보다 훨씬 낮다. 부동산 PF 비중이 낮아서다. DB손보의 대기업 대출이자율도 3.8%로 메리츠화재 보다 낮다.
금리가 높으면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게 금융의 기본 원리다. 저금리에서 이자율은 비용이지만 고금리 환경에서 이자율은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이다. 고금리로 불황이 깊어지면 고위험 대출의 위험도 높아진다. 부실화가 최소화된다고 해도 부동산 PF로 인한 고수익 기회자체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메리츠증권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동안의 주력부분이던 자기매매와 투자은행(IB) 부문의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 관련 비중이 높은 데 대한 우려도 높다. 회사 측이 위험관리를 자신하는 만큼 부실화 가능성은 낮다고 하더라도 수익환경 악화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메리츠지주가 출범해도 증권 부분에 지금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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