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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 칼럼]분권형 개헌, 민생 못지않은 현안이다

여야 대치상황 때문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대선공약이 사장되고 필수적인 국정 사안들조차 모르고 패싱 당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여야 협치는 어불성설이 되고 말았다.

국제사회의 경제, 문화, 에너지, 디지털기술 등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호가 과연 제대로 항해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정치의제의 다양성은커녕 단세포적이며 근시안적인 대립만 지속되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면 정부 여당이 국정을 비전있게 기획하고 원활하게 추진할 동력을 모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국가 위상이 추락하고 민생은 고난 속에 파묻힌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은 정치난국으로 비롯된 국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크게 성찰하고 심기일전해야 한다.

여야가 머리를 맞댈만한 이슈 중 하나로 헌법 개정을 꼽을 수 있다. 헌법 개정은 블랙홀이라는 말도 있듯이 정치권과 국민여론에 흡인력이 크기 때문에 그만큼 논의과정에서 여야 협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여야의 최고위급 지도자가 결심하고 나서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각각 헌법 개정에 관련된 공약을 내놓았다. 윤 후보는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개헌을 10대 공약 중 하나로 제안했다.

한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5.5%가 찬성했고 36.1%가 반대했다.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별개로 정부 형태와 권력구조에 대한 응답이었다. 진보성향 응답자는 76.2%가, 보수성향은 41.4%가 각각 찬성했다. 두 후보의 ‘헌법 발언’으로 누가 당선되든 권력구조 개편 등을 위한 개헌 논의에 불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었다. 그러나 대선 후 헌법개정 의제는 뜨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를 보면 1919년 상해 임시정부의 임시헌법과 1948년 7월 17일 공포한 제헌헌법, 그리고 4·19 혁명 시기인 1960년 6월 15일 개정한 제2공화국 헌법이 뿌리에 해당한다. 3개 헌법이 모두 의원내각제였지만 정부 형태를 떠나 주권재민과 국민 기본권 보장 등 민주국가의 최고 통치규범으로서 표준이었다.

그 후 박정희에 의한 1961년 5·16군사쿠데타와 1969년 3선개헌 및 72년 유신쿠데타, 그리고 전두환 하나회 집단의 내란 후 각각 권력집중형 대통령독재 헌법으로 바뀌었다. 총구로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 정권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주권재민 원칙과 건국이념에 반하는 것으로 전면 무효다.

특히 유신헌법 개정은 그 주체가 국회 아닌 비상국무회의였고 국민투표도 비상계엄조차 해제하지 않은 채 찬반토론을 금지한 위헌적 절차로 진행했다. 본질적으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국민기본권을 제한하고 구속적부심 제도를 폐지해 17, 18세기 서구 시민혁명 이전의 전근대적 헌법이었다. 이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억지쓰기도 했다.

그 후 1987년 6월항쟁이 승리해 그해 10월 국회에서 유신헌법을 개정했지만 여야 협상의 산물로 유신독재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는 못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지적해온 이른바 ‘87년체제의 한계’가 잔존해 있는 것이다.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측은 대통령 4년 중임제든 의원내각제든 그 방향과 내용을 언급하지 말고 방법과 절차만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처음부터 논란이 불거져 시동을 걸 수조차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헌법개정 특위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으며 국민의사를 좀 더 정밀하게 수렴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도 검토한다고 한다. 이렇게 절차적 틀을 구성한 뒤 개헌의 내용은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 정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하러 개헌을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는 최소한 분권형 민주정부 구조로 완전 복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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