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민간인 입장이 되어 보니 같은 일들인데도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원래부터 민간인이었던 지인들은 농담처럼 아직 먹물이 덜 빠졌다고 말하고 있지만.
요즈음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로 여기저기가 공사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연말 연례행사처럼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보도블록 교체나 노면 포장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러한 현상은 반복이 되고 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노후화된 시설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관점, 시간적으로 연말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등을 열심히 설명했던 것 같다.
그런데 민간인의 입장에서 보니 연말에 책정된 예산을 소진하기 위한 행태라는 비판이 좀 더 이해가 된다. 어제까지 큰 문제가 없던 보도를 굳이 연말에 들어내고 새로운 보도로 교체하는 것이 그렇게 시급할까? 굳이 11월이 돼서야 본격적인 공사들이 이뤄질까? 내년 초로 미뤄 공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나오는 질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서울시나 구청의 관련부서들이 많은 논의를 했고, 연말의 일정시점 이후에는 공사를 못하게 하는 강경한 방안도 시행해봤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또 요즈음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도로 차선 일부를 통행 제한하고 하는 공사다. 물론 교통통제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공사일 것이다. 문제는 교통 통제시간에 좀 더 유연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통제가 통행량이 많은 출퇴근 시간이나 금요일 오후에 진행된다면 어떨까? 왜 굳이 이렇게 밀리는 시간에 공사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안전이 위협받을 정도의 급하게 할 만한 공사도 아닌 경우 이런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공사하는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기 내에 마무리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시민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공사시간을 좀 더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상황들이 발생할까? 여러 가지 원인 중의 하나가 시민의 시각이 아닌 공무원의 시각에서만 이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시민의 원망보다는 해당 조직이 계획한 사업 또는 예산을 사용함으로써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관점이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보도 교체나 공사의 조속 완공을 원하는 해당 지역의 민원과 보행의 편의성 증진이나 시민 안전의 확보라는 명분까지 얻게 되면 더욱 공무원의 시각은 강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두 가지 사례뿐만 아니라 시민의 편에 서서 시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정작 일을 하는 도중에는 공무원이나 행정 조직의 입장만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에 매몰되는 경우 시민의 입장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장애물로 여기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시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행정에서 금과옥조처럼 내세우고 있는 시민을 항상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시민의 시각으로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시각을 달리해서 보는 것은 작은 시도에 불과하지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나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연말의 보도블록 교체 공사나 시도 때도 없이 진행되는 교통통제와 같은 일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고홍석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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