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17일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다. 정부는 올해 한·사우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을 조율했고 이번에 회담이 성사됐다. 빈 살만 왕세자의 한국 방문은 2019년 6월 이후 3년 만이다.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리는 빈 살만의 위상은 3년 전보다 더 높아졌다. 당시는 부총리였으나 지난 9월 총리가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나라의 경제력은 더 커졌다. 3년 전에는 한국에 10조원 투자 보따리를 내밀었는데 이번에는 이보다 열 배 많은 100조원대의 사업협력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고금리·고물가, 무역수지 적자 등 온통 어두운 지표뿐인 한국경제에 숨통을 트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재계총수들도 빈 살만 왕세자와 티타임을 통한 회동에 대거 나서면서 사우디 특수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올해로 수교 60주년을 맞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협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질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개혁 군주’를 자처한 37세 지도자 빈 살만은 고유가로 벌어들인 달러로 ‘석유 이후의 사우디’를 건설하겠다는 청사진(‘사우디 비전 2030’)을 갖고 있다. 인류 최대 역사로 불리는 ‘네옴시티’가 대표적이다. 사우디 북서부 사막과 산악지역에 서울 면적의 44배나 되는 미래 신도시를 만드는 사업이다. 공식 사업비만 5000억달러(약 660조원)에 달한다. 도시인프라와 정보기술,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한 사업 기회가 열려 있다. 네옴시티에서는 청정원료만 사용한다. 삼성물산 포스코 한국전력 등 5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네옴시티에 65억달러(약 8조5000억원) 규모의 친환경 그린수소 공장을 짓는 이유다. 네옴시티 외에도 이번 한-사우디 회담을 계기로 방위산업, 철도 건설, 스마트팜 등 모두 21건의 ‘빅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모두 투자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른다.
중동은 한국경제가 1970년대 오일 쇼크로 휘청일 때 돌파구를 만들어준 곳이다. 특히 사우디는 1973년 우리 건설업이 처음 진출한 국가이고 해외 누적 수주액(1551억달러) 1위국이다. 원전 수출 전망도 밝다. 과거 양국의 경제 협력은 건설업, 플랜트 위주였다. 이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친환경에너지, 바이오, 인공지능(AI), 도심항공교통(UAM)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면 질적으로 더 발전할 여지가 크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 민관이 원팀 스피릿으로 뭉쳐 40년 만에 찾아온 제2중동 특수의 기회를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