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이 불투명하다던 한중 정상회담이 전격 성사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머리를 맞댔다. 2019년 12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3년 만이다. G20 다자회의 중 짬을 낸 만남이라 회담은 25분으로 짧았고 공동성명도 없었지만 동북아 정세의 ‘발등의 불’인 북핵 문제,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 안보와 경제 현안에 대한 협력관계를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최근 3연임을 확정한 시 주석과 이제 임기 6개월이 막 지난 윤 대통령은 앞으로 4년반 동안 동북아 평화를 위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가야 할 사이다. 이번 첫 만남의 상징성이 부각되는 이유다.
다자회의서 조우나 환담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예상을 깨고 정상회담이 급거 성사된 것은 그만큼 양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할 말이 있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과 7차 핵실험 준비 속에 중국의 역할이 긴요해진 상황이다. 시 주석으로선 대(對) 중국 견제 전략을 펴는 미국으로 한층 가까워진 한국을 ‘광범위한 이익 교집합’을 앞세워 견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 주석은 “북 도발에 중국이 건설적 역할을 해달라”는 우리 측 요구에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 개선해나가기를 희망한다”는 지극히 원론적 답변을 했다. 앞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균형있게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북핵·미사일 도발이 한미 동맹국 간 연합훈련 등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권 행사라는 논리에 동조하는 표현이다. 북한 도발이 지속될 경우 미국이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의 한국 추가 배치 등 중국이 금기시하는 방어 조치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한중 갈등의 불씨가 된다. 대만해협, 글로벌 공급망 등의 문제를 두고 미국과 마찰 중인 중국은 북핵을 오히려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중국을 북한을 움직이는 지렛대로 쓸 수 있다는 전략도 이제 수명이 다 돼 간다.
한국 수출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한국 경제성장의 견인차였다. 또 우리의 기술과 자본이 중국의 고도성장에 큰 디딤돌이 된 것도 사실이다. 미중 패권경쟁 등 외생발 변수로 변곡점을 맞은 한중 관계는 이제 새로운 상생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화 시대에서 블록화 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는 무엇보다 국익 우선의 실용적 접근이 요구된다. 반도체 초격차 기술 등 중국이 갖지 못한 것을 한국이 가지고 있을 때 대중(對中) 교섭력은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