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과민반응이 심각하다. 작은 악재가 금융위기설로 번질 정도다. 2일 금융시장을 위기감으로 몰아넣은 흥국생명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내용을 따져보면 충분히 이해할 사안인데 온갖 ‘설’이 일파만파다.
흥국생명은 지난 2017년 5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하이브리드 증권이어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에 포함된다. 금융사의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유다. 30년 만기 후순위채지만 금리가 상대적으로 비싸다. 대신 5년차 조기 상환 콜옵션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금융사는 그걸 행사해왔다. 금리하강기엔 당연한 일이다.
이 증권의 5년 콜옵션 행사일이 오는 9일이다. 흥국생명은 그걸 포기했다. 조기 상환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대신 금리는 기존 4.475%에서 6.74%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 편이 낫다. 자기자본비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형태의 자금을 마련하려면 금리가 12%대다. 환율도 높다. 돈이 더 들어간다. 누가 봐도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시장에선 보험시장 자금위기설에 국제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의 급상승 전망까지 나돌았다. 지난 2009년 우리은행에 빗댄 오판이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국제금융시장에 돈이 마를 때였다. 우리은행도 4억달러를 15%짜리로 재발행할 바엔 옵션 포기가 나았다. CDS가 올라간 건 사실이지만 2주 만에 정상화됐다.
금융시장에선 다른 보험사도 옵션 행사 포기가 잇따를 것으로,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모양이다. 실제로 DB생명도 신종자본증권(300억원)의 조기 상환 콜옵션의 행사일을 오는 13일에서 내년 5월로 변경했다고 2일 공시했다.
철저한 경계심을 탓할 이유는 없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재무안정이 금융사의 필수 덕목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좀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현상을 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사에 대한 자본 규제는 더 강화됐다. 재무구조는 튼튼해졌다. 금융당국도 인정하는 대목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선 내년까지 금리상승과 횡보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때까지 돌아오는 외화채권이 줄잡아 300억달러에 이른다. 줄줄이 이어질 콜옵션 포기 때마다 위기설이 나돌아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지금과 같은 금리상승기엔 조기 상환 콜옵션 포기는 자금난과 위기 징후가 아니라 현명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현시점에서 이보다 나은 저비용 자본 조달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종의 뉴펀딩으로 보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