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권한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다. 한 의원은 대주주의 횡포를 막고 개인투자자와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의미에서 주주대표소송 결정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책위)로 이관해 대표소송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연금의 수익률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이 섰을 때 주주대표소송을 해야한다”고 답했다.
과연 주주대표소송이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를 이끌어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경영계에서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한 바와 같이 주주대표소송이 장기적인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그러한 주주가치 제고에 따른 이익이 국민연금의 수익에 구체적으로 귀속되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이처럼 주주대표소송의 경제적 실익이 불분명함에도 수책위에 주주대표소송 결정권한까지 쥐여주는 것은 다른 숨은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하는 무리수다. 법적으로 수책위는 국민연금이 가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금운용본부의 자문기관 역할을 담당한다. 검토와 심의를 위해 설치된 기구이며, 명시적으로 부여받은 의결권 행사 권한이 없다. 따라서 추후 대표소송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책임이 없다. 수책위, 기금운용위원회 그 누구도 대표소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기관투자자가 집사(Steward)처럼 투자대상 기업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8년 국민연금에 도입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기금을 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나날이 하락 중이다. 올해 상반기 적자가 76조원이며, 기금 운용 전문인력의 이탈이 심화되면서 기금 운용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본적인 기금 운용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집중해야 할 때인 것이다.
국민연금이 정치적인 입김에 휘둘려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에는 정부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으며,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 등이 모두 보건복지부 산하다. 정부 주도의 현 지배구조는 ‘연금 사회주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연금 운용 관련 최고의사결정 기구를 구성함에 있어 관료들의 참여나 인사권 행사를 배제하도록 하는 해외 주요 연기금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수책위 위원들마저 ‘지역가입자’ ‘근로자’ ‘사용자’단체서 추천된 외부 인사로 구성돼 있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검토하는 회의가 열릴 때마다 각 단체의 입장을 대변하기 바쁘다. 해당 분야 전문가로 수책위를 재구성함이 마땅하다.
윤석열 정부에서 연금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한 중대한 과제 중 하나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지배구조를 과감히 개편하여 독립적인 전문가 집단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는 오명을 벗어나 진정한 개혁을 이뤄내길 바란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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