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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또 금융권 ‘갹출’…자금대란 막을 수 있을까?
금융지주 95조 지원 발표에도
CP 등 초단기금리 상승 계속돼
부실화 불안·공포 진정 시급해
美연준은 RP발작 때 신속 개입
유동성위기 대응체계도 재정비
우량기업도 흑자도산 위험 커져
중앙銀의 최종대부자 역할 중요

‘구성의 오류’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개별 주체로는 합리적 의사결정이지만, 전체로 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구성의 오류는 이기적 탐욕으로 초래되지만, 극도의 불안과 공포 때문에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자금시장이 극도로 경색된 이유는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금리상승과 경기침체로 단기성 자금으로 연명해 온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부실해질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가장 크다. 부동산PF에는 증권사와 여신전문회사들이 주로 투자를 많이 했다. 만기가 짧은 ABCP 형태나 지급보증 형태가 많다. 해당 PF의 사업 위험이 그때그때 반영된다. 최근 금리가 급등하면서 주택시장이 얼어붙었고 개발 중인 부동산의 미분양 위험이 높아졌다.

부동산 PF에 투자를 많이 한 증권사들의 취약한 자금조달 구조도 문제다. 예금과 보험료로 자금을 증권사들은 주로 단기로 자금을 조달한다. 금융회사이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상대적으로 조달금리가 높다. 만기를 짧게 해서 빌리면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증권사들은 회사채 보다 만기가 더 짧은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발행이 많다. 특히 중소형사일수록 단기조달 의존비중이 높아 자금시장 경색에 아주 취약하다. 부동산 PF 위험은 결국 증권사들이 발행하는 기업어음(CP)어 전자단기사채 금리에 그때그때 반영된다.

세번째는 부동산 PF와 증권사에서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일반 기업들의 자금조달도 막힐 수 있다는 공포다. 건설사가 무너지면 협력사도 함께 위험해진다. 증권사들은 회사채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권사가 한 두 곳이라도 기능을 상실하면 거래상대방 등을 통해 금융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몰고온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아직 부동산 PF 부실이 실제로 터진 것도, 기능을 상실한 증권사가 나온 것도 아니다. 관건은 경계, 불안, 공포를 잠재우는 일이다.

지난 1일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연말까지 95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달 말 정부가 내놓은 ‘50조원+α’ 공급대책에 대해 시장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95조원은 금액이 더 크지만 당장 12조원은 기존에 예고한 증권시장안정펀드에 대한 출자분이어서 지난 대책과 겹친다. 10조원은 각 그룹내 계열사 몫이다. 시장 유동성 공급 73조원은 연말 자금수요에 맞춰 어차피 집행해야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늘리는 것인 지 명확하지 않다.

마침 연말 법인들의 자금소요가 늘어나는 시기를 앞두고 있다. ‘95조 대책’의 집행시기와 방법, 기준 등도 모호하다. 급한 돈은 은행 대출로 마련하도록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보통 은행은 웬만큼 기신용이 높지않으면 기업대출을 할 때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는 게 보통이다. 문턱이 꽤 높다.

외환시장을 주도하는 은행들은 환율 급등으로 외화자금 확보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들은 외화차입을 위해 더 많은 원화자산을 담보로 제공해야 한다. 이날 95조원 대책 발표 직후에도 CP 등 초단기금리 상승세는 계속됐고, 건설사 회사채는 헐값으로 추락했다.

미국도 2013년 긴축 발작, 2019년 기준금리 인상국면에서 단기자금 시장이 얼어붙는 환매조건부채권(RP) 발작이 나타났다. 초저금리가 끝난다는 불안이 주요 원인이었다. 단기자금시장의 문제는 국채시장, 즉 금리시장 전체로 파장이 미친다. 유동성이 부족하면 기업과 금융회사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한 국채를 마구 내다 팔아야 한다. 미국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직접 개입해 짧은 시간에 시장 불안을 잠재웠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해야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진행 중인 한국은행은 단기금융시장 개입에 부정적이다. 한은의 이같은 판단 역시 구성의 오류에 해당하지 않을까? 단기자금 조달이 막히면 멀쩡한 기업도 어이없이 쓰러질 수 있고,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한은이 나서도 실제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푸는 게 아니라면 통화정책과 상충되는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은의 선언적 개입이라도 제 살길만 모색하던 시장 참여자들에게는 태도를 바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일단 불안을 해소한 후에 옥석을 가리며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 게 올바른 순서인 듯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금융회사 경영진을 불러 돈을 갹출하는 방식은 아무래도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위기는 늘 새로운 얼굴로 온다. 이 참에 다양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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