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의 오류’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개별 주체로는 합리적 의사결정이지만 전체로 보면 합리적이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구성의 오류는 이기적 탐욕으로 초래되지만 극도의 불안과 공포 때문에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자금시장이 극도로 경색된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우선 금리상승과 경기침체로 단기성 자금으로 연명해온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위험에 대한 경계다.
이어 부동산PF에 투자를 많이 한 증권사들의 취약한 자금 조달구조다. 예금과 보험료로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이나 보험사와 달리 증권사와 여신금융사들은 대부분의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한다. 특히 증권사들은 회사채보다 만기가 더 짧은 기업어음(CP)과 전자단기사채 의존 비중이 크다. 단기자금시장 경색에 아주 취약하다.
세 번째는 부동산PF와 증권사에서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일반기업들의 자금 조달도 막힐 수 있다는 공포다. 건설사가 무너지면 협력사도 함께 위험해진다. 회사채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증권사가 한두 곳이라도 기능을 상실하면 거래상대방 등을 통해 금융 시스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직 부동산 PF가 무너진 것도, 기능을 상실한 증권사가 나온 것도 아니다. 관건은 경계, 불안, 공포를 잠재우는 일이다. 1일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연말까지 95조원의 유동성을 시장에 투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달 말 정부가 내놓은 ‘50조원+α’ 공급대책에 대해 시장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95조원은 금액이 더 크지만 당장 12조원은 기존에 예고한 증권시장안정펀드에 대한 출자분이어서 지난 대책과 겹친다. 10조원은 각 그룹 내 계열사 몫이다. 시장유동성 공급 73조원은 연말 자금 수요에 맞춰 어차피 집행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 늘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집행시기와 방법, 기준 등도 모호하다.
미국도 2013년 긴축 발작, 2019년 기준금리 인상 국면에서 단기자금시장이 얼어붙는 환매조건부채권(RP) 발작이 나타났다. 초저금리가 끝난다는 불안이 주요 원인이었다. 단기자금시장의 문제는 국채시장, 즉 금리시장 전체로 파장이 미친다. 유동성이 부족하면 기업과 금융사들은 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한 국채를 마구 내다 팔아야 한다.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은 최종 대부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을 진행 중인 한국은행은 단기금융시장 개입에 부정적이다. 한은의 이 같은 판단 역시 구성의 오류에 해당하지 않을까? 단기자금 조달이 막히면 멀쩡한 기업도 어이없이 쓰러질 수 있고, 그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한은이 나서더라도 실제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푸는 게 아니라면 통화정책과의 상충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은의 선언적 개입만으로도 제 살길만 모색하던 시장참여자들에게는 태도를 바꿀 이유도 될 수 있다. 일단 불안을 해소한 후 옥석을 가리며 시장질서를 바로잡는 게 올바른 순서인 듯하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금융회사 경영진을 불러 돈을 갹출시키는 방식은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는 늘 새로운 얼굴로 온다. 이참에 다양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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