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안전이 ‘질식’당했다. 29일 밤사이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서는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가득 찼다. 실종된 딸과 아들, 친구와 연인을 애타게 부르짖는 외침이 밤새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숫자는 점점 더 늘었다. 59명, 146명, 151명, 154명.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분초를 다투는 구조작업 현장에서 지옥이 따로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고 심폐소생술(CPR)에 매달리는 소방관 사이로 팝송 ‘섹스 온더 비치’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일부 시민은 구급차의 붉은 경광등을 조명삼아 떼창을 부르고 춤을 쳤다. 일부 클럽은 사고에도 음악을 계속 틀었다. 한 클럽은 전광판에 ‘이태원 압사 ㄴㄴ(노노) 즐겁게 놀자’는 문구를 내보냈다.
사고가 일어나고 3시간 뒤인 30일 새벽 2시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수십대의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일렬로 늘어섰지만, 일부 술집과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조속히 귀가하길 바란다”는 경찰의 확성기 소리에도 일부 시민은 스마트폰으로 사고 현장을 촬영하기에 바빴다. 모포와 옷가지로 얼굴을 덮은 피해자들의 사진들이 여과 없이 SNS에 실시간 올라왔다. 들 것에 실려온 심정지 환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한 대학병원 간호사도 있었다. 영상 제목은 ‘이태원 참사 응급실 브이로그’였다. 그렇게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가 시작됐다.
참담한 마음이다. 이태원 참사 소식을 듣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떠올린다면, 그 뒤를 이어 유가족의 얼굴을 단 한 번이라도 떠올린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잔인한 행동이다. 누군가의 무심한 시선은 누군가의 가슴에 평생의 한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가 느꼈을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그 크기를 자의적으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처한 고통을 충분히 듣고 헤아려야 한다.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정확하고 신중한 태도로 사고 원인과 수습 과정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뤄야 할 때다.
다행히도 그 어느 때보다 ‘엔데믹 대목’을 노렸던 유통·호텔·외식업계가 핼러윈 행사를 줄줄이 취소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첫 핼러윈 시즌이라 관련 상품 출시는 물론 행사도 줄을 이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깊은 애도를 표하며 서둘러 관련 상품을 거뒀다.
용인에버랜드와 잠실 롯데월드 등 테마파크는 다음달까지 이어지는 모든 핼러윈 축제를 취소했다. 롯데그룹은 롯데백화점·롯데마트에서 진행하던 프로모션도 전면 중단했다. 신세계그룹 역시 스타벅스를 비롯해 이마트·백화점·아울렛·온라인몰에서 핼러윈 관련 행사를 전면 취소했다. 관련 상품도 폐기한다는 방침이다. GS25와 CU 등 편의점업계도 핼러윈 관련 프로모션을 중단했다.
더는 인간성마저 ‘질식’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시 한 번 피해자들에게 깊은 애도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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