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0일은 42회째 ‘항공의 날’이었다. 기념식은 일요일과 겹치는 관계로 사흘 앞선 27일에 열렸다. 1981년 당시 교통부는 항공이 빠르고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인식과 함께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항공의날을 제정했는데 항공의날 심의위원회를 열고 국무회의를 통해 기념사업과 행사 계획을 확정했다.
국가기록원에 보존돼 있는 자료에 의하면, 항공의날 심의위원회는 날짜를 특정하기 위하여 몇 가지 참고자료를 제시했다. 안창남의 국내 첫 비행일(1922년 12월10일), 국제민간항공기구 설립일(1947년 4월 4일), 교통부 항공과 설립일(1948년 4월 1일), 대한국민항공사(KNA) 설립일(1948년 10월 30일), 국제민간항공기구 가입일(1952년 12월 11일), 대한항공공사(KAL) 설립일(1962년 6월 19일), 대한항공 민영화일(1969년 3월 6일) 등이 후보군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대한국민항공사의 설립일인 10월 30일이 항공의 날로 제정되었다. 특히 대한국민항공사 설립일 아랫줄에 ‘민항공 첫 취항’이라는 메모가 눈에 들어온다.
이후 항공의 날을 언급할 때는 민간항공이 서울~부산 노선을 첫 취항한 날을 기념해 항공의날이 제정되었다는 얘기가 회자돼왔다. 그런데 당시 신문 등 언론보도에 의하면 민간항공의 첫 취항은 1949년 11월 1일로 기록돼 있다. 대한국민항공사가 운용하는 ‘스테이션 왜건’이라는 5인승 비행기는 승객 3명을 태우고 김포비행장을 이륙해 김해비행장에 착륙했다.
우리나라 민간항공에 관한 사실이 광복 이후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일제의 통제 아래 이루어졌던 항공사업을 우리 민간항공의 역사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행대에 관한 편성을 천명하였고, 캘리포니아 윌로스에서 개교한 비행학교도 임시정부의 일관된 의지를 보여준 결과다.
1943년 8월 19일 임시정부는 ‘공군설계위원회 조례’를 국무위원회에서 가결하고 공보에 게재한다. 당시 조례는 오늘날 시행령에 준하는 법률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토와 영해와 영공을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조례는 장차 펼쳐질 대일전쟁과 독립 후 전개될 조국의 항공 분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조례에 ‘공군’을 명시하고 있어서 언뜻 민간항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조문에 주목하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공군설계위원회 조례는 10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제2조에는 1항 공군건설에 관한 일체사항, 2항 방공건설에 관한 일체사항, 3항 일반항공사업에 관한 일체사항을 연구하고 계획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3항의 ‘일반항공사업에 관한 일체사항’이라는 조문은 최초로 언급된 우리나라 민간항공에 관한 국가적 차원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의 날 기념식과 이어진 ‘최초 비행의 역사와 항공’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주관하면서 100여년에 이르는 우리나라 항공의 역사가 창공의 비행운처럼 다가온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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