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대책 재원 방안 비현실적
단기시장→회사채 불안 더 확산
중소형 증권·건설사 부도 위험↑
단기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부와 업계 대책의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최종병기인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은 긴축적 통화정책과 어긋날 수 있다는 딜레마에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소극적이다. 은행과 증권사들은 각자의 이해 때문에 선뜻 돈을 내놓기 어려운 처지다. 금융당국이 개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현황 파악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의 진앙이 만기가 짧은 단기자금시장이고, 투입할 수 있는 유동성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허점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극적 반전이 없다면 재무여력이 취약한 증권사와 건설사들의 부도가 현실화되고 ‘도미노 효과’로 금융시스템이 큰 충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현재 매일 PF 사업장별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곳이 나오면 자금지원을 하겠다는 접근이다. 전국에 걸쳐 있는 PF 사업장 현황을 모두 파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하는 PF 사업과 자금조달에 문제가 있는 곳들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재원도 문제다.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연내까지 약 14조원, 내년 상반기에는 54조원이다. 연말까지 증권사에 만기도래하는 유동화증권(ABSTB, ABCP) 발행 잔액만 27조원다. 올 6월말 부동산 PF 규모는 112조원, 지급보증까지 합하면 150조원이다. 부실화 될 곳이 부동산 얼마가 될 지가 관건이지만 정부가 마련하기로 한 50조원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은행이 은행채를 적격담보에 포함시키면 은행권이 유동성을 공급할 여력이 생기는 것은 맞다. 자금이 급한 PF사업장일수록 부실위험도 크다. 은행이 위험이 큰 채권을 적극적으로 인수할 리 없다. 기껏해야 위험이 낮은 사업장의 브릿지론을 본대출로 바꾸는 일정을 앞당기는 정도일 것이다.
정부는 대형증권사들이 갹출해 중소형사의 PF ABCP 등을 인수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현실을 따져보면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위험이 낮은 사업장에는 주로 대형사들이 대출이나 지급보증을 한다. 유사시 대형사들이 자체 자금으로 인수해서 버티면 위기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중소형사들이 참여한 PF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다. 정상 사업장을 유지하는 게 급한 대형사들이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중소형사 대출까지 떠안기는 어렵다.
비슷한 이유로 채권시장안정펀드는 난항이 불가피하다. 은행은 물론 증권사들도 상당한 돈을 내야하는데 이미 채권가격 하락으로 손실이 큰 상황에서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채권안정기금 규모를 20조원 보다 더 늘릴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20조원도 어려운데 어떻게 더 늘릴 수 있느냐는 평가다. 정부가 ‘50조원+α’의 부족함만 자인한 꼴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정부가 부동산PF에 집중하고 있지만 자금시장 대란은 일반 기업들에도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 정부의 지자체 지급보증 확약과 긴급자금 일부 집행으로 투매에 따른 국채금리 급등세는 진정됐지만 민간 자금시장은 여전히 난리다. 기업어음(CP), 양도성예금증서(CD), 통안증권단기물(91일) 금리는 오름세가 계속되고 있다. 국채에 가까운 국책은행 채권도 발행금리가 5%를 넘고 있다. 대형 금융회사 채권도 6%대 금리가 등장했고, 대기업 회사채도 7~8%대 발행금리를 제시할 정도다. 그럼에도 유찰로 발행에 실패하는 곳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발 자금대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단기자금시장은 물론 회사채 시장 전반으로 경색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대로면 PF 관련이 아니더라도 단기자금 조달 의존이 높은 증권사나 건설사에서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일단 한 곳에서 부도가 나면 연쇄적으로 거래상대방으로 위기가 전염돼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금은 시장의 불안심리를 확실히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강도가 높을 수록 부실을 유발한 이들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크다. 지난 몇년간 부동산 PF로 떼돈을 번 건설사와 증권사들의 책임을 묻는 장치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