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마치 생물처럼 살아움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한다. 여러 기업을 하나로 만들어 덩치를 키우는 ‘합병’으로 성장하기도 하고, 반대로 하나의 기업을 여러 개로 쪼개는 ‘분할’을 통해 효율화를 꾀하기도 한다. 후자인 기업분할은 상법에 근거해 회사의 주력 사업과 비주력 사업을 나눠 각 사업부문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진행한다.
기업분할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인적 분할’과 ‘물적 분할’ 2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인적 분할은 나뉘는 새로운 회사의 주주 구성비율이 종전 회사의 주주 구성비율과 동일한 형태가 돼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에 따라 신설회사 주식을 배분받게 된다. 주주들이 손해볼 게 없는 셈이다. 반면 물적 분할은 종전 회사가 새로운 회사 지분의 100%를 보유해 자회사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즉, 물적 분할은 인적 분할과 달리 종전 회사가 신설회사의 100% 모회사가 되고, 신설회사는 상장 등을 통해 주력 사업 육성에 집중하게 된다. 다만 이 경우 기존 회사 일반주주의 주주권이 간접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기업들은 물적 분할을 선호한다.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여 동안 상장법인의 물적 분할 사례는 총 211건으로, 전체 상장법인 분할 건수(241건)의 88% 수준에 이른다. 실제 최근 국내 P사, H사 등도 핵심 사업을 물적 분할 추진하다가 언론보도 이후 주가가 떨어지자 소액 주주들이 크게 반발하며 사회적 이슈가 됐다. 결국 P사는 물적 분할계획을 철회했고, H사는 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한 후에야 분할작업을 마무리했다. 앞서 상장회사인 S사, L사의 경우 핵심 사업부를 물적 분할로 분리 후 신설한 회사를 상장해 자금을 조달하고 신규 투자를 늘렸는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주주가 유입되면서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희석되고 종전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는 등 소액 주주의 피해 우려가 커졌던 바 있다.
이처럼 물적 분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투자자 피해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금융당국은 지난 9월 2일 ‘물적 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부 주주 권익제고 방안’을 공동 발표했다. 기업이 물적 분할 시 구조개편계획과 주주보호방안을 공시하고, 물적 분할을 반대하는 모회사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한편 자회사 상장심사도 강화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즉, 물적 분할 시 구조조정, 상장 내용 및 일정 등을 공시함으로써 정보비대칭에 따른 소액 주주 피해를 막고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해 물적 분할을 반대하는 주주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방식은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데 소액 주주 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번 대책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의 관심이 큰 사안인 만큼 발빠르게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르면 내년 초 시행될 예정이다. 아울러 자회사 상장심사 강화방안은 분할된 회사의 상장심사 시 모회사 일반주주의 이익제고를 위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는지 심사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상장을 제한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당국의 이 같은 조치는 소액 주주 등 투자자 보호에 대한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볼 때 참으로 시의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모처럼 마련된 투자자 보호장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의 공정성 등 이해관계자 간 이해충돌로 인한 잡음이 들리지 않도록 해외 사례를 충분히 참고할 필요가 있다. 또 공론화 과정을 거쳐 세부 시행방안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모쪼록 이번 조치를 통해 소액 주주들의 권익이 보호되고, 국내 자본시장이 한 걸음 더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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