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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광주의 심장’ 충장로 상권이 위태롭다
체감공실률 30% 육박…상권붕괴 초읽기
공실· 폐업 속출… 권리금 ‘상실의 시대’
‘청년창업·상권르네상스’ 시도…결과는 미지수
파격할인 이벤트 안내판. 손님은 ‘득템’ 주인은 ‘피눈물’이다. 충장로 상가 곳곳은 파격할인 등으로 손님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서인주 기자

[헤럴드경제(광주)=서인 주기자] ‘권리금 없음’, ‘양말 600원’, ‘노래방 80분 5000원’, ‘80% 폐점 세일’

늦장마가 그친 28일 오후 5시. 광주를 대표하던 핵심상권 충장로를 5분만 걷다 보면 이 같은 문구들을 손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손님은 ‘득템’이지만 주인은 ‘피눈물’이다.

상가 곳곳은 임대와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아예 건물이 통째로 비어있는 곳도 한둘이 아니다. 상가 2층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공실률은 급증한다. 지하1층, 지상 4층 30평 건물은권리금이 없는데도 1년 넘게 임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보증금 6000만원에 임대료 500만원을 감당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2~3년 전만 하더라도 수억원의 권리금이 존재하던 곳이다.

충장로는 불과 몇달 전만 해도 문을 열었던 신발가게, 옷가게, 화장품, 통신매장이 모두 사라졌다. [서인주 기자]

광주우체국앞 사거리. 우체국 건너편은 수십년간 광주공시지가 1위를 차지하는 금싸라기 땅이다. 하지만 인근 상권에도 폐업 그늘은 깊어만 가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문을 열었던 신발가게, 옷가게, 화장품, 통신매장이 모두 사라졌다.

값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에만 30여 곳의 상가가 비어있다. 과거 충장로는 주말이면 인파들로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현재는 초라한 모습이다. 붕어빵, 액세서리 등 거리의 노점상이 종적을 감춘 것으로도 세태를 짐작 할 수 있다.

29일 한국부동산원 공실률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9년 4분기 18%였던 금남로·충장로 상권 공실률은 올해 2분기에는 23.5%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전체 광주지역 공실률이 12.9%에서 13.4%로 증가한 것에 비하면 상승폭이 상당히 높다. 코로나 4단계 대유행이 시작되면서 체감 공실률 추이는 30%를 넘고 있다.

이 때문에 광주자영업 사장님들은 최근 광주시청을 찾아 생존권 투쟁시위를 이어갔다. 그들의 절박한 심정은 황량한 거리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수천만원이 투자된 대형 PC방이 폐자재와 먼지로 둔갑하는데도 이틀이면 충분하다. 서인주기자

실제 이날 오후 충장로 지하 PC방은 철거공사를 진행했다. 수천만원이 투자된 대형 PC방이 폐자재와 먼지로 둔갑하는데는 이틀이면 충분하다. 코로나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상당수 자영업, 소상공인은 생계 공포를 호소하고 있다.

유명 영화관이 있던 골목에는 폐업한 가게가 넘쳐났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외곽지역에 들어서면서 무등, 태평, 제일극장 등이 문을 닫으면서 고객유입이 줄었다.

‘엎친 데 덮친격’. 걸어서 10분 거리인 조선대마저 비대면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대학생 손님도 80%가량 감소했다.

현장의 자영업 사장님들은 벼랑끝 생존을 호소하고 있다.

충장로 인근 복합쇼핑몰에서 키즈카페를 운영하는 B사장은 작년 말부터 직원, 알바를 없애고 있다. 인건비를 주고 나면 적자다 보니 혼자 일하며 버티고 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C사장은 매출이 줄면서 고육책을 꺼내들었다.

음식값을 10% 내리고 배달전선에 뛰어 들었다. 매출은 조금 늘었지만 식자재값, 배달대행료 등이 늘면서 오히려 수입은 줄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충장로는 확실히 과거의 영예를 잃어가고 있었다. 서인주기자

충장로는 확실히 과거의 영예를 잃어가고 있었다. 마치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아들 방원에게 권력을 빼앗기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충장로는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하면서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상무지구, 수완지구 등 신도심이 잇따라 형성되면서 상권이 분산됐다. 온라인 소비패턴의 급격한 변화는 의류, 신발, 화장품 등 소비재가 밀집한 충장로 상권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여기에 코로나19의 출현은 카운터 펀치로 다가왔다. 음식점, 주점, 카페 등 대면업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충장로는 쇠락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충장로 상가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출입문을 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D사장은 “에어컨을 켠 채로 문을 열면 전기요금이 늘지만 닫아 놓으면 손님이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손님들이 매장에서 인터넷으로 바로 가격을 비교한다. 최저마진으로 장사할 수밖에 없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공인중개사 E씨는 “충장로의 경우 상가 공급이 많은 데다 수요가 급감하면서 창업 열기가 식은 상태지만 임대료는 내려가지 않고 있다” 며 “권리금 시장도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광주동구청과 상인들은 충장로 르네상스를 위한 해법 마련에 나섰다. 사진은 광주시가 선정한 맛집의 대표 메뉴. 이 집은 1974년 문을 열었고 떡볶이, 김밥, 상추튀김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서인주 기자]

광주시 동구는 이달초 ‘충장로 4·5가 빈집 청년창업 채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충장로 4·5가 일대 빈집이나 빈 점포를 활용하고 마을과 상생할 수 있는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상인들도 상가번영회 활동과 상권르네상스 사업 공모 등 활로를 모색 중이다. 그러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충장로 상권 살리기에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경채 광주소상공인연합회장은 “호남권을 대표하는 쇼핑의 중심지였던 충장로 상권이 경기침체와 코로나 여파로 그 어느 때 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면서 “정부방역 지침을 완화하고 영업제한에 따른 피해를 서둘러 보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si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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