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테러리스트 만다린 싸우고(아이언맨), 치명적인 숙적인 실버 사무라이와 혈투를 벌이며(엑스맨-더 울버린), 외계 행성의 반란군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는(수퍼맨-맨오브스틸) 남성 영웅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은 어쩌다 ‘원더우먼’같은 여성 히어로는 최근 10년 새 눈에 띄지 않는 걸까요. 코믹북에서는 여전히 여성 영웅들이 세를 불리고 있지만 스크린에서는 유독 찬밥 신세입니다.
영국의 BBC방송은 이와 관련해 “히어로물에서는 여성 캐릭터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주인공의 미션 성공을 위한 조력자 수준이라는 것이죠. 그러다 가끔은 로맨틱 대상이되기도 하고, 갑자기 악당으로 바뀌는가 하면 주인공의 잠재적이고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이언맨의 기네스 펠트로가 꼭 그런 격입니다.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 분)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를 돕고 농을 던지며 러브라인을 형성하지만 결국에는 구해져야 하는 운명입니다.
이를 두고 메리앤 요한슨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가 청소년과 젊은 남성들의 취향을 맞춘 결과”라며 “미국 영화계는 관객들이 여성 히어로 영화를 보길 원하지 않는다고 믿는다”고 꼬집었습니다.
또 영화계에서는 ‘캣우먼의 저주’라는 말도 나옵니다. 2004년 개봉한 할리 베리의 ‘캣우먼’이 최악 히어로물로 꼽힌데 이어 이듬해 개봉한 ‘엑렉트라’마저 흥행에 실패하자 “여성 히어로물은 안된다”는 인식에 쐐기를 박은 꼴이 돼버렸기 때문입니다.
‘캣우먼’은 원작과 상관없는 스핀오프(파생) 시리즈인데다 연출도 미흡해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쇼걸”, “아마추어 같은 할리 베리의 연기”라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론도 있습니다. 만화가이자 일러스레이터인 다이애나 탬블린은 “여성 히어로가 주인공이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엉성했다”고 반격합니다.
시네마블렌드의 캐시 리치도 “두 영화의 저조한 박스오피스 실적은 무비스타가 남자였더라면 심각한 문제가 안됐을 것”이라며 “헐크가 망했을 때 그 실패의 원인을 남성 무비스타에 돌리지는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성 히어로 영화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화 ‘어벤저스’의 감독이자 마블종합엔터테인먼트의 컨설턴트 조스 웨던은 실제로 원더우먼 스토리를 담은 시나리오를 집필했습니다. 하지만 워너브러더스의 대표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준비중인 히어로물이 많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영원히 새로운 원더우먼을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걸까요? 블록버스터급의 원더우먼 같은 캐릭터는 힘들지만 코믹북에 등장하는 강소 여성 히어로를 영화화하는 것은 기대해볼 만하다는 시각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여성 감독을 육성하고 여성의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말하는 문화적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기우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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