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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 X-파일>미운 오리 새끼 되어버린 서머스, Fed 의장은 물건너 갔네…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연말께 자리에서 물러날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로렌스 서머스(59) 미국 전 재무장관이 자진 사퇴했습니다. ‘낙마’라는 표현까지도 들리지만 일단 말 위에 올라간 적이 없으니 형식상으론 낙마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머스가 다 잡은 고기를 놓친 것 같은 그림은 자연스럽게 그려지네요.

어쨌든 지난 1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Fed의장으로 고려하고 있는 후보 목록에서 지워달라는 그의 의사를 받아들였습니다.

야당인 공화당은 고사하고 민주당 인사들의 반발이 컸고 대통령도 여당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을 굳이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경제 대통령’ 자리를 맡길 생각은 없었겠죠.

공화당은 서머스 지명 반대 운동의 선봉에 섰고 민주당 의원들 역시 동참했습니다.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인 제프 머클리(오리건), 셔로드 브라운(오하이오),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등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란 전망도 이어졌습니다. 서머스 전 장관도 상황이 상황인만큼 쉽게 반박하며 나설 수 없었을 겁니다.

그가 Fed 의장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인물은 아닙니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인 로버트 서머스와 어머니 아니타 서머스 모두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경제학자였습니다. 집안에는 폴 사무엘슨(삼촌)과 케네스 애로우(외삼촌)라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도 둘이나 있습니다.

[사진=세계경제포럼(WEF)]

16세에 메사추세츠공대(MIT)에 들어가 물리학에서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고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레이건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도 있었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건 1999~2001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제71대 재무장관직을 맡았고 2001년부터 5년 동안 하버드대 학장을 지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에선 지난 2009~2010년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됐던 금융위기 당시 부실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을 건의하며 일부 국유화 전환을 건의했던 인물도 서머스 전 장관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시티은행,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들은 최근 구제금융을 졸업하고 실적도 크게 올렸습니다. 정부는 씨티은행에 450억달러를 지원하고 570억달러를 회수하기도 했죠.

이런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야를 불문하고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월가와의 유착관계 등이 문제시됐기 때문입니다. 서머스는 대공황 이후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분리를 강제한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에도 앞장섰고 JP모건체이스,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에서 강연을 하며 거액의 강연료를 챙기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안그래도 월 가의 탐욕을 경계하고 있는 정치권으로서는 이같은 행보가 달가울리가 없습니다.

독선적인 성격도 약점의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는데요, 서머스는 그의 성격 때문에 크리스티나 로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과 불화를 겪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오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는데, 서머스 자신도 “가끔 그럴 때가 있었을 것”이라며 인정한 부분이라고 합니다.

여성 차별적인 발언도 문제됐습니다. 지난 2005년, 한 컨퍼런스에서 그는 3가지 이유를 들며 과학기술연구분야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는데요, 그의 발언은 여성보다 남성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해석되며 논란이 커졌습니다. 그는 보스턴글로브에 “나의 견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논란을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었고 지금껏 그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세계은행에 몸담으며 불거졌던 ‘더러운 산업’ 논란도 스스로 자신의 발등을 찍은 한 사건이었습니다. 1991년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있으면서 인구가 적은 아프리카 국가들로 공해산업을 옮겨야 한다는 내용의 란트 프리쳇의 메모에 서명한 것이 논란이 됐죠. 언론을 통해 이 메모가 공개되고 환경운동가들의 비판과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물론 일종의 풍자였다며 해명했지만 당연히 수그러질리 없었습니다.

어찌됐건 이날, 정해진 적 없는 후보 사퇴 소식이 전해지고 몇몇 현지 누리꾼들은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월가 내부 인사가 의장이 되면 악몽이 될 것”이라며 “오바마는 옐런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서머스를 의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회전문 인사가 됐을 것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그는 갔습니다. Fed의장이 아니라도 월가를 등에 업고 강연으로 이름을 날리겠죠. Fed의 운명은? 아마도 재닛 옐런 Fed부의장의 손에 달리게 될 것 같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의견입니다.

yg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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