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경상적자국 전락” 우려 잇따라
인도·印尼등 경상수지 적자 1997년과 닮은꼴
미국의 연내 양적완화 축소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신흥국의 외환위기 공포가 인도와 인도네시아를 넘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말레이시아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1위 경제대국인 남아공의 랜드화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말레이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대폭 감소해 경상적자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남아공, 랜드화 바닥 없는 추락=남아공은 올 들어 악재의 연속이다. 랜드화가 올해 20% 가까이 폭락하면서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요 산업인 광산업계는 파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남아공 흑백 공존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 타계 가능성으로 인종 갈등이 우려되면서 시장이 요동쳤다.
이에 따라 남아공의 1분기 경제성장은 0.9%에 그쳤고, 중앙은행은 올 경제성장률을 당초 2.7%에서 2%로 하향조정했다. 랜드화 폭락은 수입에너지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상승을 초래했다. 7월 소비자물가는 6.3%를 기록해 통화당국의 연간 인플레 억제선인 3~6%를 넘어섰다.
길 마커스 남아공준비은행 총재는 21일 “우리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며 “남아공은 침체에 들어갈 수도 빠져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말레이시아, 경상적자국 임박=말레이시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현재까지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 규모가 대폭 감소했다.
지난 2분기 말레이시아의 경상수지는 26억링깃(약 8840억원)으로 흑자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1분기 흑자가 87억링깃, 지난해 4분기 229억링깃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 폭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도 지난해 말 7.9%이던 것이 지난 2분기에는 1.1%로 급감했다.
달러에 대한 링깃화 가치도 올 들어 7% 이상 빠졌다. 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이 때문에 지난달 말레이시아의 신용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로이터는 말레이시아가 이 추세로 가면 인도, 인도네시아 및 브라질처럼 경상적자국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제티 아크타르 아지즈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21일 기자회견에서 “외부 도전이 제기되지만 (견고한) 내수가 성장을 계속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7~1998년 외환위기 데자뷔 실체는?=1997~1998년 아시아를 패닉으로 몰고 갔던 외환위기 상황이 현재와 겹쳐지는 까닭은 위기국들의 경상수지 적자 때문이다. 당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는 국내 저축 여력을 넘어선 경쟁적인 고정투자 확대로 경상수지가 악화된 상황에서 대외 부채가 늘어나면서 부채상환 능력이 떨어져 발생했다.
최근의 신흥국 위기설이 16년 전의 망령을 불러내는 것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경상적자가 2000년대 아시아의 고정투자 붐과 맞물려 늘어나는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은 “신흥국이 미국의 출구전략으로 후유증을 겪겠지만, 외환보유고가 높아 1990년대 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위기 재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정부는 23일 위기 타개를 위해 인플레이션 억제와 실업자 발생 방지, 경제성장 촉진 등을 위한 경제정책 패키지를 발표할 예정이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